더 북한 시론

한·미 정상회담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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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9월 14일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지난해 11월 경주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간의 회담이 개최된 지 10개월 만이다. 경주 정상회담 당시에는 '9.19 북핵 공동성명'이 채택돼 북핵 문제 해결의 서광이 보이는 상황이었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도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았다. 한.미 동맹 '위기론'도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0개월 사이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많은 이슈가 제기되고 있어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사고를 구조화하는 방법으로 '마인드 맵(mind map)'이란 것이 있다. 선(線)을 따라 사고하는 평면적인 사고를 탈피해 다양한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백지 한 장 위에 그려 넣고 이를 세부적인 개념으로 가지치기를 해 나가는 기법이다. 이렇게 하면 사안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입체적 사고가 가능해진다.

현 시점에서 9월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우리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은 북핵, 미사일, 동맹, 작전통제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사안을 '각론'별로 접근하기보다는 국민이 이러한 문제들에 관해 마인드 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미 관계라는 것이 단순한 듯하면서도 북한 문제, 경제 문제, 동북아 전략균형, 자존심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과도적 변혁기'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마인드 맵이 안 된 상태에서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한 '로드맵'을 얘기하게 되면 국민 입장에서는 북핵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등과 연결이 잘 안 된다.

그러기에 한.미 관계의 '큰 그림'이 제시돼야 한다. 한.미 동맹이 북한에 대한 억지 및 방어 위주의 '20세기적 동맹'으로부터 지역과 범세계적 차원에서 협력의 폭과 질을 확대해 나가는 '21세기적 동맹'으로 탈바꿈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양국 정상이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속에서 주한미군이 왜 재배치되고, 동맹의 범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전시작전통제권이 왜 환수돼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전략적 사고의 폭을 한반도에만 고정시키면 미군은 작전통제권 반환 후 '한국 방위의 한국화'를 위해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므로 결국 한반도에서 철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고의 폭을 아태지역으로 확대시키면 미군은 오산.평택 지역에 남아 역내 안정을 위해 전략적 유연성을 가진 군대로 지속 주둔하게 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동맹의 큰 그림과 더불어 비중 있게 다뤄야 할 사안은 역시 북한 문제다. 북한 문제의 범주 속엔 핵, 미사일, 금융제재, 인권 등이 포함된다.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한 유엔의 대북 결의안 통과가 갖는 의미는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 외교에 대해 국제사회가 동의를 표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은 이러한 대북 압박 구도에 대해 한.미 양국이 명백히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줘야 한다. 중국까지도 대북 결의안에 동참한 상황이므로 중국 변수와 한.미 동맹 사이의 간극이 그만큼 좁아졌다고 할 수 있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방지하면서 '21세기적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겠다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양국 정상은 한.미 FTA가 경제적 차원의 이득과 더불어 외교안보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공표할 필요가 있다. FTA를 통해 한.미 양국의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심화시켜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를 제고하고 업그레이드된 신용을 바탕으로 한.미 동맹의 경제적 가치를 신장시키며, 이를 통해 한.미 동맹이 군사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적 측면을 포괄하는 진정한 파트너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미주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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