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동씨 9억 배상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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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5공 시절 살해된 뒤 간첩 누명을 쓴 '수지 김 사건'과 관련, 당시 사건을 은폐.조작한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에게 배상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6부(윤재윤 부장판사)는 국가가 장씨와 전직 안기부 간부, 김씨 살해범이자 전 남편 윤태식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장씨는 9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는 2003년 김씨 유족에게 45억70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했었고, 이 배상금을 장씨 등에게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윤태식씨에 대해서만 "4억5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고, 장씨에 대한 청구는 시효 소멸을 이유로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안기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에 관한 최종 결정권자였던 장씨가 전직 안기부 직원에게 수지 김(본명 김옥분) 살해의 진실을 은폐, 조작함으로써 김씨 유족에게 간첩의 멍에를 씌우고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공무원에 대한 구상금 채권은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날부터 5년간 유효하므로 김씨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2003년 10월부터의 시효가 아직 소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성우 기자

◆ 수지 김 사건=1987년 1월 홍콩에서 상사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윤태식씨는 말다툼 끝에 아내 수지 김씨를 살해한 뒤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아내가 북한에 납치됐고 자신도 납치될 뻔했다가 탈출했다"고 거짓 신고했다. 당시 안기부는 윤씨의 범죄 사실을 알면서도 이 사건을 '여간첩 납치미수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2000년 3월 수사에 착수한 서울지검 외사부는 이듬해 윤씨를 살인 및 시체 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고, 윤씨에게는 2003년 징역 15년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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