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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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화관광부 산하기관에 대한 청와대의 인사 청탁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는 한국영상자료원장 후보에 든 세 명에 대해 '적격 인물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들 모두 추천위원들에게서 전문성.능력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가 영상자료원장으로 민 사람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도왔던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노문모) 출신 연기자 L씨로 밝혀졌다. 청와대가 부사장으로 청탁한 K씨와 관련해 아리랑TV 측도 "문화부와 논의한 바 있다"고 인사 개입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도덕성 검증 과정에서 세 명에게서 결격 사유가 발견돼 재공모를 결정했다"며 이제는 후보들의 인격까지 건드리고 있다. 또 "(인사청탁이 아니라) 통상적인 인사 협의"라고 변명한다. 이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과 다름없다.

국민은 "인사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敗家亡身)시키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인사 청탁 파문이 벌어진 지 일주일이 다 돼 가는데도 왜 침묵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또 문화부 차관이 인사 청탁의 장본인으로 지목한 이백만 홍보수석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이 입을 닫고 있는 이유는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이 정부의 주특기가 뭔가. 다름 아닌 명예훼손 소송, 정정보도 청구다. 이번 사태의 진상을 조사해 유 전 차관의 주장과 언론 보도가 사실과 다르면 유 전 차관이나 언론을 고발하면 된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뭔가 찔리는 데가 있기 때문일 게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와대의 386이 국정을 농단해 왔던 사실의 극히 일부만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약속대로 청탁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언제까지 그들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국정을 농단하는 사태를 방관하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