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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일에 치여 사는 "철인교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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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 G국교 5학년 담임 황모교사(35)의 요즘 하루 일과는 오전8시20분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왕겨탄 난로에 불을 피우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학교난방이 조개탄난로에서 왕겨탄으로 약간 나아졌다곤 하지만 불을 피우기는 마찬가지여서 쉽지 않다.
『언제까지 화부 (화부) 노릇을 해야할지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휴지와 장작을 넣고 난로불을 지피다보면 연기가 교실에 가득 차고, 창문을 열어놓으면 아이들이 춥다고 야단이지요.』
황교사는 아침마다 한차례씩 「난로불 피우기 소동」을 치르다 보면 수업도 시작하기 전에 힘이 빠진다고 했다.
이 와중에서도 학생들은 아침자습을 한다. 오전 9시에 시작되는 정규수업에 앞서 황교사가 전날 퇴근하기 전 칠판에 적어놓은 문제풀이를 하는 것이다.
아침기온이 영하3도 이하로 내려가야 피우는 난로는 그나마 왕겨탄 배급이 모자라 3∼4교시가 되면 난로불이 꺼진다. 그 이후엔 학생 51명의 훈김으로 버텨야 한다.
『난로에서 나오는 연기와 먼지, 분필 가루 속에서 수업하다 보면 오후시간엔 목이 칼칼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교사를 처음 시작할 땐 목에서 피가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황교사는 주당 32시간의 수업과 9개 교과목을 모두 가르쳐야 하는 것이 능력으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황교사에게 맡겨진 것은 과중한 수업부담뿐만이 아니다. 우유급식비·어린이 신문대금을 「수금」하고, 기성회비 납부를 독촉하며, 각종 학생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정리해야한다.
오후2시40분 수업이 끝나지만 황교사는 청소감독뿐만 아니라 귀가 길의 학생들이 교문앞 건널목을 건널 때까지 하교지도도 한다.
1학기초 갖가지 명부를 작성하고 환경 미화작업을 할 때나 겨울방학을 앞두고는 잡무에 파묻혀 야근을 하기 일쑤다.
『보통 오후5시쯤 퇴근하지만 솜처럼 피곤에 젖어 교재 연구할 생각은 엄두도 못내요.』 황교사는 교사가 전문직으로 불리는 게 쑥스럽다고 했다.
김모교사(32)는 서울의 공립고교에서 3학년 생물을 담당하다 전교조와 관련돼 지난1학기 학교를 떠난 해직교사. 『아침7시30분에 학교에 도착, 정규수업 시작 전 1시간씩 보충수업을 하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다시 1시간씩의 보충수업, 밤11시까지의 자율학습 지도를 해야 합니다. 교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기계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김교사가 맡았던 수업은 주당 21시간이었지만 보충수업을 합하면 주당 30시간에 가깝다. 어떤 날은 하루 7시간을 같은 내용의 수업을 해야했다.
수업 부담 이외에 각종 기록부 및 성적 처리, 학생과 학부모 면담, 교외생활지도, 진학지도 등 교사의 업무는 겹겹이 쌓여있다.
『일반인들은 교사가 방학이 있어 좋은 직업이라고 하지만 실제 근무해보면 어림없는 소리라는 것을 바로 깨닫게 될겁니다.』 김교사는 전교조가 교사의 근무조건과 교육환경을 개선하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결코 엄살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황교사와 김교사의 경우는 우리 교육조건에서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이보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과대·과밀학교, 낙도·벽지학교도 수 없이 많다.
대한교총이 펴낸 「당면교육정책 개선방안」자료에 따르면 우리 나라 교사의 주당 수업시간은 초등 28.3시간, 중등 29.2시간으로 일본(초등26·중등24시간), 영국(초등23·중등15시간), 캐나다(초등25·중등25시간) 에 비해 훨씬 많다.
단순한 수업시간 비교 이외에 과밀한 학생수·잡무·행사동원 등을 감안하면 우리 나라 교사들이 얼마만큼 격무에 시달리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교 교사의 경우 정규수업과 보충수업·자율학습·관련업무 처리에 주당 61.4시간, 하루10.3시간을 시달리는 것으로 한 조사에서 나타났다.
『하루 10.3시간 중 사무정리 등 잡무처리가 30%이상을 차지하는 3.8시간이나 되니 학생개별지도 등에 여유를 낼 수 있겠습니까.』
인천시 K고 정모교사(42)는 『방학이 돼도 경찰 등과 합동으로 야간청소년선도에 나서야하고 일·숙직도 해야 하므로 마음먹은 교재연구는 지나치고 만다』고 했다.
교사의 이감은 근무부담은 교육법시행령이 규정하고 있은 최소한의 교사 법정정원을 확보하자 못하고 있기 때문. 중학교의 경우 교사 법정정원 확보율이 82%정도로 2만6천여 명의 교사가 모자라며 인문계고교(확보율82%) 도 1만8천여 명의 교사가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실업계고교는 법정정원확보율이 65%에 불과, 1만6천여 명의 교사가 모자라 인문고교사보다 더욱 고달프다.
국민학교의 경우 「학급 이상 학교에 증치교사를 배치해야 하나 이 규정이 강제성이 없어 거의 유명무실해 일부 배치된 증치교사들도 예체능 등 특정과목의 교과전담교사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교사는 철인도 아니고 만능인간도 아닙니다. 화부에서 사환까지 겸해야 하는 근무조건이 개선되지 않고 우리 교육이 발전되길 바란다면 너무 허망한 기대입니다.』 어느 노교사의 푸념이다.

<한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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