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나라, 계속 엉거주춤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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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하고, 그 시기와 방법까지 제시했다. 이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이 몇가지 있다. 여러가지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국회 과반수 의석을 보유한 제1당으로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논란만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선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盧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이 나왔을 때 한나라당은 "국민투표밖에 없다"며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하더니, 지금은 상당히 후퇴한 인상이다. 최병렬 대표가 어제 국회연설에서 '선(先) 최도술 비리의혹 진상규명, 후(後) 국민투표'입장을 표명했지만, 여전히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아리송하다. 더구나 측근 비리에 연루됐을 경우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가능성까지 열어놓음으로써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들었다. 처음 보인 반응이 즉흥적이었다면 지금이라도 잘못을 시인하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면 된다.

국민투표 방식의 수용 여부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도 한나라당이 앞장서야 한다. 정치권이 반대한다면 재신임 국민투표는 시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제기되는 위헌 논란에 대해서도 빨리 의견을 수렴, 정치권의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국민투표가 진행되는 와중에 위헌 판정이라도 난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재신임 국민투표는 위헌이어서 안된다"든지, "정치적 합의하에 재신임 투표를 해보자"든지 빨리 매듭지어야 국력소모를 줄일 수 있다.

崔대표의 정치개혁 방안에 대해선 다른 정당들도 즉각 찬성 의사를 보인 만큼 조만간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 당내의 반발을 핑계로 유야무야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崔대표가 제시한 5대 국가위기 과제와 해결방안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앞장서 이를 입법으로 구체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가의 총체적 혼란의 책임을 대부분 대통령에게 돌렸지만, 원내 제1당의 책임도 결코 작은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