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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사이로 유럽의 선율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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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심장부에 위치한 룩셈부르크는 인구 42만명(수도 룩셈부르크의 인구는 12만명)에 불과하지만 음악에 관해서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올해 창단 70주년을 맞는 룩셈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PL)의 활약 덕분이다. 10~11월 공연 횟수를 세어 보니 국내.해외 공연이 각 12회다.

사흘이 멀다 하고 무대에 서는 프로 악단이다. 영국 출신의 브럼웰 토비가 이끄는 OPL이 오는 11월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한다. 캐나다 OPL은 물론 토론토 심포니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는 토비도 모두 서울 데뷔 무대다.

OPL이 룩셈부르크 오페라.발레단과 무대를 함께 쓰고 있는 룩셈부르크 그랑 테아트르(시립극장)는 지난달 5년간의 개.보수를 끝내고 재개관했다. OPL은 2년 후인 2005년 6월엔 1억2천만유로(약 1천8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준공하는 새 콘서트홀로 무대를 옮긴다.

OPL이 새 보금자리로 옮겨갈 '조제핀 샬로테 콘서트홀'의 위치는 룩셈부르크시의 유럽 광장(유럽의회 사무국 건물 건너편)한복판이다. 이 사실만 봐도 룩셈부르크가 문화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문화부장관 에르나 에니코 쇼에주(62)는 룩셈부르크 음악원 교수를 지낸 피아니스트 출신이다. OPL의 연간 예산 1천2백만유로(약 1백80억원) 중 1천만유로(약 1백50억원)가 정부 지원금이다.

룩셈부르크 최초의 심포니 전용홀인 '샬로테 콘서트홀'(일명 뉴 필하모닉홀)은 1996년 설계 공모에서 파리의 '음악도시'를 설계한 프랑스 출신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파크(59)의 디자인이 당선됐다. 지난해 착공돼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1천2백~1천5백석짜리로 클래식 음악은 물론 재즈.샹송.포크.월드뮤직까지 수용할 수 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있는 룩셈부르크는 유럽의 게르만 문화권과 라틴 문화권이 만나는 곳이다. 이번 OPL 공연의 레퍼토리가 독일과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곡가인 바그너.슈만과 베를리오즈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OPL의 역대 지휘자들도 프랑스.독일.이스라엘 출신이었다.

1백10명의 단원 중 룩셈부르크 국적 소유자는 단 16명으로 15%에 불과하다. 프랑스(36명).독일(13명).벨기에(12명).미국(7명).헝가리(5명).스위스.폴란드(각 3명) 등. 이 밖에 유고.크로아티아.오스트리아.영국.이탈리아.슬로바키아.러시아.중국.일본 국적 소유자들로 채워져 있다.

17개국 출신들로 구성된'다국적 교향악단'이다. 같은 화폐를 쓰고 3개 국어 정도는 구사하는 유럽인들에게, 더구나 음악인들에게 국적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OPL에 가장 '유럽적인 사운드'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OPL은 원래 룩셈부르크 방송(RTL)교향악단으로 출범했다가 96년 '국립'으로 승격됐다. 룩셈부르크 태생의 앙리 팡시스(1900~58)가 25년간 초대 상임 지휘자를 지냈다. 39~46년엔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팡시스가 미국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활동을 중단한 쓰라린 추억도 있다.

지난해 OPL의 음악 감독에 취임한 브럼웰 토비는 영국 출신으로 캐나다 밴쿠버 음악감독도 겸하고 있다. 작곡가 출신이며 지난해엔 뉴욕필의 청소년음악회에 데뷔해 다시 초청 받는 등 청소년을 위한 해설 음악회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www.opl.lu)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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