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이 떠나간다" 문화부 침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이 11일 하루종일 외출했다가 밤 늦게 귀가하고 있다 . 김성룡 기자

유진룡(50)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경질된 다음 날인 9일 문화관광부 내부 통신망에는 '우상이 떠나간다'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유 차관은 항상 외풍을 막아 주고 내부에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 자신있게 행동하되, 자만하지 않았고, 겸손하게 행동하되 비굴하지 않았던 유 차관에게 깊은 감화를 받았다."

이 글은 문화부 통신망에서 곧 삭제됐다. 문화부 내부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통신망에는 10, 11일에도 유 전 차관의 '용기'를 돌아보는 글이 잇따라 실렸다. 역시 즉각 삭제됐으나 "정말 오랜만에 기개 있는 공무원의 모습을 보았다" "훌륭한 공무원이다. 나도 그런 공무원이 돼야겠다"는 게 요지였다. 문화부 직원 대다수는 유 전 차관의 행보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평소 외압에 맞서 실무진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합리적 일처리로 부하 직원을 이끌었던 그의 리더십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유 전 차관은 문화부 내부의 인기투표는 물론 공적 다면평가에서 줄곧 높은 점수를 받아왔다.

유 전 차관의 장점으론 정치적 중립성이 꼽힌다. 문화부 한 사무관은 "유 전 차관은 예전부터 외부 기관.단체로부터 문화부를 지켜 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문화부에는 인사.예산 관련 민원이 다양하게 들어온다. 그때마다 유 전 차관은 공정한 판단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무관은 "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비서관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의 인사청탁에 유 전 차관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유 전 차관은 그의 지론을 이번에도 그대로 실천한 것 같다"고 밝혔다. 문화부의 한 서기관은 유 전 차관을 '공무원의 표상'에 견주었다. "유 전 차관은 '비정치적'인 분이다. 부당한 사안에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너무 비정치적이라 때론 상대방에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후배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됐다"고 주장했다.

박정호 기자<jhlogos@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