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③ 시 - 김신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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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핑계로 시인을 불러낸 날은 마침 말복이었다. 삼계탕이라도 내놓고 싶었지만 삼계탕 집 앞의 줄이 너무 길었다. "그래도 도장골보단 가깝지요?" "시간은 비슷하게 걸려, 두 시간." 민망하고 죄스러운데, 시인은 또 웃는다. 아기처럼 해맑은 웃음이다.

여섯 달쯤 전, 시인은 도장골에서 나왔다. 충북 충주시 신리면, 개복숭아 숲에 둘러싸여 도장골이라 불리는 산골에서 시인은 한 해를 꼬박 살았다. 산골짜기의 헌 집을 빌려줬던 집주인이 외국에서 돌아오면서 환갑의 시인은 다시 짐을 쌌다. 마침 경기도 안산, 소래 포구가 지척인 곳에서 빈집을 찾아냈다. 갯벌 복판에 뎅그러니 놓인 집이라, 버스 정류장까지 20분을 걸어나와야 했다.

"편안한 얼굴이십니다. 도장골이 좋았지요?"

"좋았지, 시가 쏟아져 나왔지, 마누라도 놀랄 만큼 써댔지."

산중(山中)의 시인은 부쩍 시에 매달렸다. 한 해 만에 38편을 발표했다. 올해 미당문학상 최종심 후보자 가운데 가장 많은 발표 편수다. 예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도장골 시편' 연작은 38편까지 마무리했다. 십여 편 더 쓰면 '도장골 시편'이란 이름으로 시집 한 권 묶을 생각이다.

"수의(壽衣)는 여전히 짜세요?"

"그럼, 그런데 일이 잘 안 들어와."

열네 살 되던 해 집을 나와 부랑아로 30여 년을 산 시인이다. 그 사이 안 해본 일 없는 시인이다. 지게 지고, 날품 팔고, 노숙하며 겨우겨우 버텨냈던 시인이다. 그 험한 세월 속에서도 남산도서관에 올라 책을 읽고, 홀로 시를 공부했던 시인이다. 나이가 들어선 내외가 함께 수의를 짜며 쌀을 벌었고, 그렇게 번 쌀로 시를 썼다. 지금도 부부는 20여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난 원래 노동시인이 아니었어. 그래서 80년대엔 계급의식이 없다는 소리도 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배 곯아본 적 있어? 가난은 사람을 망가뜨려. 인간성 같은 건 짓밟아 버려. 난 그 피폐한 인간성을 시로 썼을 뿐이야. 리얼리즘? 다 배부른 얘기야. 도장골이 고마운 건, 내 시가 온전한 인간성을 갖춘 시가 됐기 때문이야."

산 속 살림이라고 해서 형편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시인은 예전처럼 가난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연에 감사하거나 전원생활을 예찬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시인은 자연에서 삶의 존엄 같은 걸 발견한다. 유리창에 달라붙은 청개구리,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두꺼비, 늦가을 땅바닥의 밤 한 톨에서 생명 있는 것들의 자존심을 발라낸다.

여기 실린 '민달팽이'편도 그러하다. 맨살 드러낸 달팽이를 지켜보자니 안쓰러울 수도 있겠다. 그래서 배춧잎 한 장 얹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달팽이에겐 고작 그늘일 뿐이다. '치워라, 그늘!' 실존의 존엄을 지키려는 민달팽이의 호령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은 민달팽이를 닮았다. 시인은 가난이 부끄럽지 않고, 민달팽이는 껍질이 거추장스럽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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