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 암살범은 김동식"

중앙일보

입력 1989.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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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청산리 대첩의 영웅 백치 김좌진 장군의 암살범은 지금까지 알려져 온 박상실(일명 김신준 또는 김준성)이 아니라 김동식(가명·이성림)이라는 주장이 새로 나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8월 만주 지역을 답사한 박영석 국사 편찬 위원회 위원장은 김 장군 탄신 1백주년(11월14일)에 즈음해 최근 이 같은 사실을발표했다.
박 위원장은 연변 지역을 방문했을 때 연변 대학 황룡국 교수(사학)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황 교수에 따르면 자신의 은사이며 김동식과는 중국 령안현길림성립제4중학교 동기동창인 지희겸 교수(83년 작고)가 평소 입버릇처럼『김동식이 나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김 징군 암살범은 박상실이 아닌 김동직』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그 동안 이 사실의 공개를 미뤄오다 지난해 11월12일 미국 LA에서 개최된 「한국 무장 독립 운동에 관한 국제 학술 대회」에서 이 사실을 처음 밝혔고 지난 8월12일 연변의 백산 호텔에서 박 위원장을 만나 다시 확인해 주었다.
◇당시 언론 보도-1930년 2월9일자 조선일보는『신민부 수령 김좌진이 육혈포로 사살을 당하였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나··‥』라고 김좌진 장군 피살설을 처음 보도했다.
김 장군이 피살된 1월24일로부터 보름 가량 지난 후에 비로소 첫 보도가 피살설로 나왔다. 그리고 한 달후인 2월28일자는『김좌진 살해범은 「한인 청맹원 박상실」이고 동범(공범)은 이주헌이며 김일성·김세방·김동규·이숙향 외 네가지 이름을 가진 김일성이 총을 건네주었다더라』며 범인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과 이왕헌 만이 현장에서 체포되고 박상실은 도주했으며 그에 관한 기록은 일체 없다.
이를 근거로『독립 유공자 공훈록』『한국 독립 운동대사전』등 모든 공식 문서에서도『김 장군은 중동선 산시역 부근에 정미소를 만들어 29년12월25일(음력·양력은 30년1월24일)오후 2시 작업을 하던 중 고려 공산당 청년회원이며 재중 청년동맹원인 박상실이 등 뒤에서 쏜 총탄에 맞아 41세로 순국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동직=지 교수가 황 교수에게 전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동식은 이성림이란 가명을 쓰고 있으며 중국식 이름은 김대륜이다. 원적지는 흑룡강생령안현마도석령안가황기둔. 1922년 지 교수와 함께 길림생립 제4중학교를 졸업했다. 26년 황포 군관학교에 입학했다가 27년6월 영안으로 돌아와 소학교 교사로 근무했으며 이때 혁명 지하 조직에 가담했다.
30년1월24일 김 장군을 암살한 뒤 이해 7월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32년 밀산구위서기, 34년 발리구위서기에 임명됐다가 36년6월 마적에 의해 살해됐다.
◇황 교수의 주장= 황 교수가 박 위원장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지희겸은 1928년 영안지구에 건립된 재중 조선인 청년동맹 제8구 집행 위원회의 주요 책임을 맡았고 30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김동직과는 중학 동기 동창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이때 김이 지 교수에게 범행 사실을 고백했으며 49년 연변 대학이 설림될 때부터 이 학교에 근무했던 지 교수는 황 교수의 은사이며 동료 교수였는데 83년 사망하기 전 이 사실을 황 교수에게 알려줬다.
한편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한 박 위원장은『김좌진의 암살범이 박상실이라는 것은 당시 막연히 떠돌던 풍문이 기정사실화된 것』이라고 말하고『연변대 역사 학부의 대부로 불리는 지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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