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기찬의 직격인터뷰

“정부, 민노총에 끌려다니니 국가 경영 제대로 되겠나”

중앙일보

입력 2021.08.20 00:33

업데이트 2021.08.21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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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18일 “10월 20일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날 경찰이 민주노총에 갔다. 7월 3일 서울 도심에서 벌인 대규모 불법 집회와 관련, 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을 집행하기 위해서였다. 민주노총이 막아섰다. 경찰은 군말 없이 돌아섰다.

현 정부 들어 민주노총 불법 잦아
정부는 투쟁하면 줘…강경파 득세
민주노총을 정권의 동맹세력 대접
불법 방치, 정부 레버리지 상실할 것
간부 출신 간첩사건에 입장 밝혀야

민주노총의 시위는 지난달부터 끊이지 않고 있다. 7월 3일 서울 집회에 이어 21일 세종시, 23일과 30일 강원도 원주에서 잇따라 집회를 열었다. 정부의 대응은 매번 뜨뜻미지근했다. 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막는다며 독재시대에나 있을 법한 임시검문도 불사하던 경찰이었다. 한데 민주노총 집회 때는 주저하는 모습을 넘어 시위대를 보호하는 듯한 광경마저 연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항의와 아우성은 무기력한 공권력 앞에 메아리로 스칠 뿐이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민주노총의 진격은 계속될 것인가.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를 서울 서초구 개인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첫마디는 “그 참, 이 정부에서 많이 망가졌다”였다. “이익집단인 민주노총에 정부가 이렇게 끌려다니니 민주노총이 정부 위에 있는 것 아니냐. 법과 원칙은 어디로 갔나. 국가 경영이 제대로 되겠는가”라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는 “정부와 민주노총 모두 ‘밀어붙이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노사 자치를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는 “정부와 민주노총 모두 ‘밀어붙이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며 “노사 자치를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하다. 경제도 위기다. 민주노총은 10월에 총파업을 예고했다.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다. 파업을 정해 놓고 한다니, 파업 자체가 목적이란 말 아닌가. 파업 명분이 ‘사회대전환’이라고 하는데, 희한한 얘기다. 실제로는 민주노총 요구를 100% 들어줘야 시대전환이 된다는 주장이다.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대폭적인 도전이다. 정부가 엄정 대처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이라크 파병 반대를 위해 민주노총이 파업하려 하자 ‘명백한 불법 파업이다. 가담자를 끝까지 추적해 산업현장의 피해에 상응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결국 파업을 못 했다. 이 정부는 왜 그걸 못 하는가.”
‘정부가 이래서는 안 된다. 정부부터 변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민주노총의 법 무시가 일상화했다. 이건 정치적 맥락과 관련돼 있다. 문재인 정권에선 미사여구를 나열할 뿐 결국 (관심은) 권력 강화밖에 없었다. 집권연장에 몰두한다. 여기에 민주노총이 강력한 우호 내지 동맹세력이 될 것으로 보고 대한다. 민주노총이 공공연하게 ‘우리가 촛불 주체’라고 주장하며 내미는 청구서를 이 정부가 여과 없이 받아줬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비정규직 정규직화, 근로시간의 전격적인 단축,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셀 수도 없다. 민주노총이 하면 불법이라도 나서기 주저하고, 눈치를 본다. 현 정부 들어 일상화된 이런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대로 넘어가면 정부가 레버리지(leverage, 영향력)를 상실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의 원주 집회는 집권 초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선언에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원주집회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취임한 지 며칠 됐다고 그런 선언을…. 비정규직에 대해 단세포적으로 접근한 게 실책이다. 여러 사람이 우려를 표명했지만, 귀를 닫았다. 지금 보라. 청년층이 반발하지 않는가. 정규직화한 사람도 대우에 불만이다. 시험을 치러 각고의 노력 끝에 입사한 기존 정규직의 실망감 내지 배신감도 달랠 길이 없다. 모두 불만이다. 이런 걸 예상 못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국가 경제에 얽힌 여러 관계를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놓고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나 하는 행태다. 국가를 경영하는 정부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정부의 기능과 역할이 실종된 형국이다. 정부는 실정법은 지키고, 적용은 공정하게 해야 한다. 광복절 집회는 과도할 정도로 막지 않았나. 민주노총의 집회와 비교하면 공정한 행동인가. 이러니 ‘정치 방역’이란 비판을 받는 지경까지 왔다. 국민 피로감이 극대화하는 상황에서 과학이 아닌 정치 방역으로 인식되면 국민이 계속 참을 수 있을까.”
양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을 두고 논란이다.
“노 대통령 당시 철도파업과 관련, 영장을 집행하려 경찰이 민주노총에 진입했다. 당시 정부는 ‘법 집행 과정이다’며 법의 엄중함을 견지했다.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인 법과 원칙은 그렇게 해야 지켜진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오는 이유가 뭘까.
“사회적 대화는 기본적으로 타협을 전제로 한다. 민주노총은 타협을 안 하고, 일방적으로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대정부 교섭 창구 정도로 활용하는 듯하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참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를 부리려 든다. 이런 상전이 없다. 기본 인식이 이러니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되겠는가. 이런 인식은 정부가 배양했다. 투쟁하면 정부가 줬다. 그러니 사회적 대화를 주장하는 온건파가 기를 펼 수 있겠는가. 강경파가 득세하게 된다. 아무리 정부가 무능해도 기본적인 역할마저 포기하면 안 된다. 그게 무너지면 국가가 굴러가겠는가.”
현 정부 들어 민주노총 조합원이 확 불어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가.
“투쟁하면 주지 않는가. 조합원 입장에선 많이 얻는 게 중요하다. 민주노총의 노선을 지지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주먹 쥐고 시위하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에 정부가 굴복하니 당연히 그쪽을 택하게 된다. 갈등에 갈등을 더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위험사회로 가게 된다.”
MZ 세대가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 노선에 반기를 드는 등 움직임이 심상찮다.
“그게 희망이다. 정부가 무능·무기력한 사이 MZ 세대를 중심으로 일종의 정화 운동이 일고 있다. 정치파업에 억지로 동원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호봉제처럼 획일적으로 월급이 오르는 것에 반대한다. 성과 중심으로 공평한 분배를 요구한다. 사실 임금체계만 바뀌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무슨 소용이 있나. 성과와 직무에 따라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 고용형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걸 MZ 세대가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가 그렇게 반대하던 노동개혁 물결이 밑에서부터 출렁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젊은 조합원의 이런 움직임을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니다. 향후 MZ 세대가 노사 판의 주축이 된다. 위기가 내부에서 불거질 수 있다.”
최근 청주 간첩단 사건에 민주노총 간부 출신이 연루돼 충격을 줬다.
“북한 문제에 민주노총이 늘 빠지지 않는다. 심각하게 봐야 한다. ‘노동=진보, 진보=북한과 유화적 관계’라는 도식을 가진 부류가 제법 있다. 민주노총은 그 진보의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 전체는 아니라도 북한과의 연계가 진보와 통일의 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청주 사건 연루자 중에 민주노총 교육국장 출신이 있는 것도 그런 도그마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 됐던 민주노총 간부 출신이 연루됐다면 민주노총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
민주노총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겠는가.
“민주노총 스스로 노동귀족의 굴레에서 나와야 한다. 선진국에선 노동계 출신 전문가가 많다. 투쟁꾼의 단체가 아니라 협상과 토론이 가능한 실력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치권의 민주노총 감싸기도 도를 넘었다. 노동문제만 생기면 노사 자율은 온데간데없고, 정치권이 개입한다. 이러니 툭하면 정치권으로 달려가고, 정치권은 정부를 압박한다. 경영계와의 대화는 안중에 없다. (실제로 양경수 위원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노정(勞政) 대화를 주장했다) 정치권이 민주노총의 민원처리 창구가 되면 안 된다. 무엇보다 거듭 말하지만, 정부가 정신 차려야 한다. 비정규직 제로 선언 당시 경제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질책해서 내쫓았다. 노사 자율의 원칙을 으스러뜨린 행위다. 정부가 지켜야 할 중립적인 원칙을 포기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 때도 민주노총은 지금처럼 정부를 압박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손을 내미는데 물어뜯는다’고 했다. ‘정부에 무릎을 꿇으라는 얘기인가’라고 화를 냈다. 무릎을 꿇을 것인가. 노동문제를 정권 차원에서 보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요, 사회적 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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