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악덕 고용주였다" 공무원들 결국 'K방역 사표'

중앙일보

입력 2021.08.18 05:00

업데이트 2021.08.18 11:40

지난달 22일 서울 양천구 목동 파리공원에 설치된 '찾아가는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아이스팩 등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서울 양천구 목동 파리공원에 설치된 '찾아가는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아이스팩 등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악덕 고용주나 다름없다. 그렇게 자랑하는 K-방역은 공무원을 갈아 넣은 결과물이다.”

서울 시내 한 보건소에서 근무 중인 A씨의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방역 최전선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이 일터를 떠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보건소 공무원 휴직 및 사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사직한 공무원은 468명으로 직전 3년 평균 311명에 비해 50.4% 증가했다. 지난해 휴직자 수는 1737명으로 이전 3년 평균(1243명)보다 약 39.7% 늘었다.

A씨는 “예전엔 질병 휴직 들어가는 걸 잘 못 봤는데 지금은 육아 휴직만큼 흔해졌다”며 “최근엔 휴직 중이던 사람들도 복귀 시점에 휴직을 연장하고, 명퇴 신청자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극단 선택 생각” 비율도 20%

우울증을 호소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지난 6월 23일부터 7월 9일까지 확진자가 많은 전국 17개 보건소 직원 1765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을 조사한 결과 ‘우울 위험군’의 비율이 33.4%였다. 일반 국민(18.1%) 비율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비율도 19.9%로, 일반 국민(12.4%)보다 7.5%포인트 높았다.

4년 차 보건직 공무원 B씨는 “주말에도 밤을 새워서 일하는데, 그렇다고 보람도 없다. 전화로든 현장에서든 민원인들에게 욕을 먹는 건 일상”이라면서 “정신과 다니는 직원들도 하나둘 늘고, 휴직ㆍ면직을 고민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전국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업무량이 엄청나게 늘었어도, 이 사태가 끝난다는 기약이 있다면 감내할 수 있는데 언제 끝날지 몰라 절망적인 상황”이라며 “인력을 충원했다고는 하는데,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이라 숫자가 늘어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17일 전북 전주시 화산체육관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17일 전북 전주시 화산체육관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수당 최대 57시간? “재난 상황엔 상한 없어”

현장에선 초과근무수당 상한으로 일한 만큼 보상받지 못 하고 있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지방공무원 수당 규정에 따라 재난 발생으로 시간외근무 명령을 받고 근무하는 경우 상한 시간을 적용받지 않아 실제 일한만큼 보상이 가능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곳도 있어서다. 한 지방직 공무원은 “(코로나19 상황이 아닌) 평소 상한 50시간에서 코로나 기간만 한시적으로 57시간을 적용한다고 하더라. 그 이상은 무급노동인 셈”이라고 말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에서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전국에 250개가 넘는 보건소가 있는데 모든 보건소에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특정 시기에만 그런 방침을 적용한 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공무원 수당 규정에 시간외근무수당은 ‘하루 4시간, 1개월에 57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나와 있으나 재난 상황에는 예외가 적용된다는 얘기다. 한편 일반직 9급의 경우 시간외근무수당은 시간당 8887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한다.

“방역당국, ‘네이버 공문’으로 선빵”

현장 공무원들은 방역당국의 방역 지침 전달 방식도 피로도를 높이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방역 지침에 변화가 있을 때 일선 근무자에게 지침이 전달되기 전에 온라인 포털로 기사가 먼저 나간다는 것이다.

기사를 접하고 지자체에 문의차 전화를 건 시민들은 ‘지침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답하는 공무원들에게 “아는 게 뭐냐” “왜 모른다고만 하냐”는 불만을 쏟아내 현장에선 혼란이 벌어진다. 또다른 지방직 공무원은 “민원 전화가 갑자기 폭주하면 ‘기사가 뭔가 떴구나’ 한다”며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네이버 공문’이다. 협조 공문 없이 보도자료로 선빵 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난 5월 13일 오후 서울 한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가 대기해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13일 오후 서울 한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가 대기해 있다. 연합뉴스

백신도 못 맞고 ‘확진자’ 관리

현장 공무원은 확진자나 자가격리자를 직접 만나는 ‘감염 고위험군’이지만, 백신 우선접종대상자에선 제외됐다. 공무원이 모인 한 온라인 카페에는 “자가격리 통지서랑 키트 배달한 뒤 수령증 받아오는데 왜 우선 접종 대상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민원실 직원들 백신 요청하니 국민 눈총을 받는다며 거절하더라”는 글이 올라왔다. 공무원노조 측은 “방역 업무를 하는 공무원에 대한 백신 우선접종을 그동안 꾸준히 요구해 왔고, 행정안전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으나 아직 실제적인 조치가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는 코로나 대응 인력을 비롯해 초과 근무수당 등 개선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상황이다. 노조 관계자는 “공무원들에게는 노동삼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니까 (정부는) 무섭지 않은 것”이라며 “노동조합이 실제 조합원들의 현장 요구를 정부와 만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정부가 공무원노조를 과연 진정으로 대화의 파트너, 국정 수행의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는 강한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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