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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음 읽기

현재 머문 곳에서 주인이 되는 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책을 좋아하는 한 지인이 일본 교과서에 실린 수필이라며 『베갯머리 서책(枕草子)』을 몇 장 찍어 문자로 보내주었다. 어디 보자. 내게도 어딘가에 분명 있을 텐데…. 결국 찾다가 못 찾고 새로 사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읽어도 역시 아름다운 글모음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사는 우리들 #세상 모든 행동은 마음의 결과 #과거라는 망상에서 벗어났으면

이 책은 일본에서 공부할 때 친구들 소개로 읽었는데, 그땐 문장이 괜찮은 정도였지 그리 썩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당시 서른의 나이로 이해하기엔 작가의 관조적인 태도가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사계절의 멋’이나 ‘승려가 되는 길’ 등은 출가자의 눈에 더 선명하게 그려지는 듯하고, 덕분에 시를 감상하듯 여러 번 읊조리며 읽었다.

특히 ‘승려가 된 사람은 한시도 마음 편할 새가 없으니 얼마나 괴로울까? 하지만 이것도 옛말인 것 같다. 요즘은 너무 편해 보인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사실 출가자인 나는 지금도 너무 힘든데, 바깥사람이 이렇듯 당연하게 쓰니 서운하고 씁쓸하게 읽힌다. 그래도 거듭 수긍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니 면목이 없다.

그러한 연유로 출가 이후 지난 세월을 돌아보았다. 부끄러운 속내를 털어놓자면, 나는 자주 길을 잃고 출가와 세속의 경계선 언저리를 헤매며 산 것 같다. 육신은 출가의 몸인데, 마음은 욕망덩어리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지면에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세간의 경계선 어디쯤이리라.

오늘도 잠이 덜 깬 채로 새벽에 겨우 일어나, 탁한 공기 속에서 법당문을 열었다. 이 강렬하고 공격적인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출가자의 삶이란 텁텁한 공기만큼이나 무겁고 힘들다.

몸은 여기 있으나 마음은 주인공(主人公)이 되지 못하고 저 세속에 떠돌고 있으니, 지난날 나의 본체는 과연 어디에 머문 것일까. 스스로 혐오스러운 자각이 밀려와 이른 아침부터 슬퍼지곤 한다. 내 맘을 담은 듯 무문관 수칙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문관 35칙 천녀이혼(無門關 第三十五則 倩女離魂)’ 법연 스님의 공안(公案)이 그것이다.

한 남녀 ‘천녀와 왕주’가 사랑에 빠졌는데, 부모의 욕심으로 딸을 부잣집에 시집보내려다 사달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질 수 없게 되자, 딸은 병에 들어 급기야 앓아누웠다. 시름시름 앓던 딸은 이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야반도주한다.

멀리 떠난 이들은 행복하게 살다 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되는데, 고향에 돌아온 왕주는 기절초풍할 얘기를 듣게 된다. 그들이 떠나서 행복하게 사는 동안, 천녀는 규방에 병든 채 내내 누워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그동안 나와 함께 산 여인은 누구였단 말인가. 왕주는 사실 확인을 위해 천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러자 방안에 누워있던 여인이 벌떡 일어나 하나로 합일되었다는 귀신같은 이야기다.

법연 스님의 물음은 여기서 비롯된다. 자, 그렇다면 어느 것이 진짜냐? 규방에 누워있던 여인이 천녀냐? 아니면 도망가 살던 여인이 천녀냐? 몸과 혼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면, 어느 쪽이 진짜냐는 물음이다. 참 난해하다.

사실 정답이란 없다. 다만 이 질문이 주는 교훈은 사람 따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주인공으로 살라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못할 때가 많다. 직장에서 일할 때도 몸은 직장에 있으나 마음은 집에 있고, 또 그와 반대인 경우도 다반사다. 어디에 있든지 지난 시절의 온갖 기억을 계속 실어와 번민하고 괴로워한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부터 작년에 있었던 일, 심지어 어려서 겪었던 일들까지 꺼내 가며 과거에 붙잡혀 현재를 살지 못할 때가 많다.

출가한 나라고 별반 다를 것 없다. 외부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현재 머무는 곳에서 주인공으로 살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모든 문제는 우리가 과거에 붙잡혀 있다는 데 있다. 요즘처럼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세상에서는 망상이 더해진다. 불안한 마음이 과거에 매어 자꾸만 비교하고 조급하게 만든다. 이런 마음이 사람을 괴롭히는 근원인데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은 마음이 결정해서 행동이 되고, 그것이 모든 결과를 끌어낸다고 믿는다. 육신이 여기 있어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베갯머리 서책』의 저자 세이쇼나곤(淸少納言)에 의하면, 봄은 동틀 무렵이, 여름은 밤이, 가을은 해질녘의 정취가, 겨울은 새벽녘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일 년의 절반이 하릴없이 지나고 이제 곧 가을의 문턱이다. 가을은 해질녘의 풍경만으로도 좋다 하니, 이제 그만 지난 일은 묻어두고 현재를 잘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