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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디지털 세상 읽기

뉴욕 경찰의 비자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최근 미국에서 출간돼 관심을 모으는 책 『We Have Been Harmonized(우리는 강제로 화합을 이루었다)』는 중국 정부가 디지털 도구를 사용해 중국 사회를 얼마나 철저하게 감시하는지 보여준다. 거리의 감시 카메라가 무단횡단하는 사람의 얼굴을 촬영해 그 사람이 미처 길을 다 건너가기도 전에 신상조회를 마친 후 근처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얼굴을 공개할 만큼 무서운 성능을 가졌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뉴욕시 경찰이 안면 인식 프로그램, 총기감지용 X선 장비가 설치된 차량, 그리고 ‘스팅레이(Stingray)’라 불리는 휴대전화 감청장치 등을 구매한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뉴욕 경찰만 이런 감시도구를 구매한 것도 아니고, 이런 장비가 미국에서 처음 팔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일이 문제가 된 것은 뉴욕 경찰이 사용처가 공개되지 않아서 일종의 비자금처럼 운용되는 ‘특별 지출 자금’이라는 항목을 이용해 이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거리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면 범죄가 줄어든다는 것은 검증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무서운 능력을 가진 기기가 특정 기관이나 정권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의 감시가 필수적이다. 뉴욕의 사례가 경종이 되는 것은 민주국가의 경찰도 시민의 감시를 피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빈틈이 존재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근래 들어 인공지능의 힘으로 성능이 크게 성장한 디지털 감시도구는 어느 정부나 기업에서도 탐내는 투시경이다. 우리가 감시를 게을리하는 순간 우리 자신이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