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구요? 사라지지 않은 일본말 잔재

중앙선데이

입력 2021.08.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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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호 19면

2021 쉬우니까 한국어다 〈5〉

15일은 우리 민족이 ‘다시 빛을 찾은’ 지 76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36년 가까이 강제로 써왔던 일본어 용어는 주변에서 많이 사라진 상태다. 5060세대가 어릴 적 사용하던 용어들은 거의 우리말로 바뀌었다. ‘점심 시간이 되어 벤또(辨當·べんとう)와 마호병(魔法甁·まほうびん)과 와리바시(割り箸·わりばし)를 꺼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제 없다. 도시락과 보온병과 나무젓가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간지·쿠사리·나가리·똔똔·뗑깡…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계속 사용

이 모든 것이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995년 『일본어 투 생활 용어 순화집』을 출간했고, 국립국어원은 이듬해 『일본어 투 생활 용어 사용 실태 조사』를 펴내 국민들의 인식 개선을 유도해 왔다. 법제처도 2006년부터 법률 속 일본식 표현을 알기 쉽게 바꾸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재임 중 가장 보람 있는 업적으로 ‘노견(路肩·ろかた)’을 ‘갓길’로 바꾼 일을 꼽았을 정도로, 우리말 생활화에 힘써 온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현재를 만들었다.

국립국어원이 2005년 광복 60주년을 맞아 발간한 『일본어 투 용어 순화 자료집』을 지금 다시 들춰보면,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 일본식 한자어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유명 영화배우의 행사 멘트가 영화 속 대사로 재생산되며 화제가 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顔·かお→체면)’가 없냐”는 문장이나 스타일이 좋은 배우들의 성(姓)에 ‘간지(感じ·かんじ→느낌)’라는 용어를 결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사용하기도 한다. 게임을 하다가 패를 잘 못 낸 친구에게 ‘쿠사리(腐り·くさり→핀잔)’를 주다가 “나가리(波れ·ながれ→무효)”를 외치고 가까스로 ‘똔똔(とんとん→본전치기)’을 맞춘다. 유흥업소 앞에서 ‘삐끼(引き·ひき→여리꾼)’와 시비가 붙어 ‘기도(木戶·きど→ 문지기)’에게 봉변을 당하는 일도 있다.

자동차로 ‘고바이(勾配·こうばい→오르막)’를 오르다 나뭇가지에 긁혀 ‘기스(傷·きず→흠집)’가 나거나, 옆집 ‘잉꼬부부(鸚哥夫婦·いんこ-→원앙부부)’의 ‘뗑뗑이(點點-·てんてん-→물방울무늬)’ 옷만 입는 아이가 ‘무뎃뽀(無鐵砲·むてっぽう→막무가내)’로 ‘뗑깡(癲癎·てんかん→생떼)’을 부려 짜증이 나기도 한다.

기름에 튀긴 것을 뜻하는 포르투갈어 ‘템뻬로(tempero)’가 ‘덴푸라(天婦羅·テンプラ→튀김)’로, 우리가 깨꽃이라 부르는 ‘샐비어(salvia)’가 ‘사루비아(サルビア→샐비어)’로, 요행을 뜻하는 ‘플루크(fluke)’가 ‘후롯쿠(フロック→엉터리)’로 표기된 것은 문화의 이전과 변형이라는 면에서 흥미로운 주제로 삼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일본어도 하나의 외국어로서 무작정 수용보다는 의미와 용례를 알고 적절한 상황에서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동기획: 국어문화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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