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도술件이 뭐기에 재신임 묻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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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신임 투표의 성격과 일정을 제시, 혼선을 줄인 것은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盧대통령이 재신임을 자청한 까닭은 여전히 모호하기 짝이 없다.

우선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혐의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대통령이 재신임이라는 초헌법적 조치를 들고 나왔느냐 하는 점이다. 盧대통령은 '눈앞이 캄캄했다' '국정 마비라고 생각했다'고만 토로했다.

그런 개인적 감상이 헌정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신임 투표와 어떤 인과관계에 있는지를 대통령은 국민에게 설명했어야 했다. 그래야 재신임 투표가 필요한지에 대한 국민의 올바른 판단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런 과정이 생략된 채 바로 재신임으로 비약되니 국민이 어리둥절하고 정치권이 혼란에 빠진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盧대통령은 재신임 투표를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측근 비리에 재신임을 받겠다는 것이 국민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정치개혁 추진과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이 재신임되면 정치개혁을 하고 불신임되면 정치개혁을 포기한다는 건가.

방법상 이견이 있다면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지 재신임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구상을 강요할 일은 아니다. 특히 盧대통령은 국회와 언론 상황을 들어 '이대로는 앞으로 4년, 국정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신임을 받으면 총선과 관계없이 국회 의석분포를 바꾸고 언론 논조를 뒤집을 초헌법적 권능이 생긴다는 말인가.

盧대통령은 좀더 분명한 입장을 밝혀 재신임 정국을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대통령 재신임투표는 취임 이후 업적과 그 과정에 드러난 리더십에 대한 평가, 그에 따라 남은 임기를 계속 맡길 것인지를 묻는 중간평가의 성격으로 진행돼야 마땅하다. 그것이 국민 불안과 정치권의 혼선을 최소화하는 길이자 진정으로 정치개혁을 이루는 첩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