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뇌를 재부팅하고 싶다던 로빈, 마지막 순간의 진실은…

중앙일보

입력 2021.08.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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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1일은 로빈 윌리엄스(오른쪽)의 7주기다. 사진은 생전 그가 아내 수잔 슈나이더와 행복했던 모습. [사진 위드라이언픽쳐스·까멜리아이엔티]

11일은 로빈 윌리엄스(오른쪽)의 7주기다. 사진은 생전 그가 아내 수잔 슈나이더와 행복했던 모습. [사진 위드라이언픽쳐스·까멜리아이엔티]

11일로 세상을 떠난 지 7주기를 맞는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따라 할 수 없는 천재적인 유머 감각, 어떤 상처도 위로해줄 것 같은 넉넉함과 따뜻함의 소유자였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수다 요정 지니,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가사도우미 할머니로 분장한 아빠, ‘굿 윌 헌팅’의 심리학 교수 숀 맥과이어를 기억해보라.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의 루스벨트 대통령, ‘해피 피트’ 시리즈의 허세 펭귄 러브레이스도 빼놓을 수 없다.

김혜선의 ‘7주기에 부치는 글’
웃음·감동의 장인 로빈 윌리엄스
부검 결과 ‘루이소체 치매’ 확인
가까웠던 이들 17명 다큐 제작
‘로빈의 소원’서 그의 사투 담아

2014년 8월 11일 할리우드의 명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로빈의 죽음이 보도됐다. 예순셋. 알코올과 마약 중독, 도박 등 미확인 의혹들이 쏟아졌다. 특별한 웃음과 감동을 주던 사람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니…. 가족과 이웃, 동료, 팬들에겐 큰 슬픔이었다. 그는 왜 그렇게 떠난 것일까.

지난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로빈의 소원’(감독 테일러 노우드)은 로빈 윌리엄스가 7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이유를 비롯한 할리우드 웃음 장인의 알려지지 않은 민얼굴을 밝힌다. 11일 개봉하려다 코로나19 상황 탓에 올 가을로 미뤘다.

다큐에 따르면, 사망 두 달 후 아내 수잔 슈나이더 윌리엄스는 부검의 소견서를 통해 남편이 ‘루이소체 치매’라는 퇴행성 뇌질환을 앓았음을 알게 된다. 진단 사실은 2016년 대중에 공개됐다. 그가 병명도 모른 채 고통받았고, 인지 장애, 사지 떨림, 불안, 수면장애, 편집증, 환각, 망상에 시달렸지만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에서 혼신의 힘으로 연기했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1951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로빈은 자동차 회사인 포드사의 경영진이었던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을 부유하게 보냈다. 저택의 큰 방에서 혼자 장난감과 하던 놀이를 연기로 발전시켰다. 1973년 줄리아드 연기학교에 입학해 연기 훈련을 받았고 이후 클럽하우스에서 코미디 공연을 하다가 TV 시리즈 ‘모크와 민디’의 외계인 역에 캐스팅됐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 ‘죽은 시인의 사회’ ‘피셔 킹’으로 진중한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세 차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대사로 전 세계인들을 위로한 ‘굿 윌 헌팅’을 통해 1998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윌리엄스(오른쪽)가 루즈벨트 대통령을 연기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3’ 촬영 현장에서 숀 레비 감독과 장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윌리엄스(오른쪽)가 루즈벨트 대통령을 연기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3’ 촬영 현장에서 숀 레비 감독과 장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로빈의 유머 감각은 작은 배역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알라딘’의 램프의 요정 지니의 대사를 녹음할 땐 숱한 아이디어로 녹음실 엔지니어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때론 그 유머 감각을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해 발휘했다. 줄리아드 시절의 친구이자 영화 ‘슈퍼맨’의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낙마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됐을 때 응급실에 의사 복장으로 찾아 리브를 웃겨 준 일은 유명하다.

굴곡도 많았다. 20대 때부터 명성을 얻은 그는 술과 약물에 빠졌다. 1983년 친구였던 배우 존 벨루시가 서른셋에 약물 과용으로 사망하자 겨우 자신을 추스르는데, 첫 번째 결혼이 이즈음 끝났다. 명성의 무게감,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견디고 뛰어난 유머 감각을 20년간 유지했지만, 2003년 다시 술을 찾는다. 알코올 중독 재활, 두 번째 이혼, 심장 수술을 하며 힘겨운 50대를 통과했다.

김혜선 대표

김혜선 대표

50대 후반에 만난 그래픽 디자이너 수잔과 세 번째 결혼하면서 그는 행복한 장년에 가까워졌다. 샌프란시스코 마린 카운티 주택가에서 매일 개를 산책시킨 동네 아저씨 윌리엄스는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고 매주 화요일 지역 극장에서 즉흥 코미디 공연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대단하지만 평범한, 삶의 균형을 맞춰가고 있었다. 루이소체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는.

로빈이 죽기 전 2년간의 의학 기록을 살펴본 의학박사 브루스 밀러는 루이소체 치매가 “전에 본 적 없는 파괴적인 형태의 치매”라고 설명했다. 멈출 수도, 치료법도 없는 최악의 치매가 그의 뇌를 잠식한 것. 걷고 말하는 것조차 기적이었다는 진단이다.

늘 낙천적이면서도 삶의 소중함과 두려움에 예민했던 로빈은 자신이 잘못되고 있음을 알았다. 대사 외우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유머와 연기도 자신감을 잃었다. 밤마다 망상에 시달려 사람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냈다. 정신을 차리면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 뇌를 재부팅 하고 싶어.” 그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밝혀진 진실이 뉴스로만 소비되지 않게 하려고 그와 가장 가까웠던 이들 17명이 용기를 냈다. 아내 수잔과, 고인이 출연한 마지막 작품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의 숀 레비 감독, TV 시리즈 ‘크레이지 원스’의 제작자 데이빗 E. 캘리, 친구인 코미디언 모트 살, 마린 카운티의 이웃 등이 다큐 ‘로빈의 소원’에 나와 로빈 윌리엄스를 얘기한다. “촬영장에 매일 200명이 함께 했지만, 힘겨워하는 로빈의 사투에 대해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침묵하는 게 이제는 도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레비 감독의 말이다.

한 사람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일은 알리고 기억하는 것. 질병을 당사자만의 책임으로 몰거나, 고통의 이유도 모른 채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이 병을 고칠 수 있어요. 누구도, 로빈이 겪은 고통을 똑같이 겪게 해선 안 돼요.” 수잔의 말은 울림이 크다.

“슬픈 일은 없었으면 싶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죠. 슬픔의 목적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한 거예요. 행운을 빌게요. 그런 게 인생이니까요.” 로빈 윌리엄스가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힘겨웠지만 자유로워진 지금, 세상을 향한 ‘로빈의 소원’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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