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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결정권자가 누군가요? 정말 궁금해서 묻습니다 [이상언의 '더 모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코로나19 백신 문제 책임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OECD 38개 회원국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OECD 38개 회원국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12년에 ‘흥해라흥 픽쳐스’라는 곳에서 만든 ‘1루수가 누구야’라는 개그 영상이 있습니다. 유튜브 조회 수가 3900만을 넘은 인기작입니다. 이 영상은 미국의 듀엣 코미디언 버드 애벗과 루 코스텔로가 1938년에 라디오 방송으로 한 만담 ‘Who’s on first?’가 원작입니다. 애벗과 코스텔로의 만담은 미국 '명예의 전당'에 헌정돼 있다고 합니다. 오리지널 버전에서 1루수는 Hu, 2루수는 watt, 3루수는 Aidono입니다. 이 이름들이 who, what, I don’t know로 들려서 생기는 오해가 만담의 웃음 포인트입니다. 흥해라흥은 1루수 이름은 ‘누구’, 2루는 ‘뭐’, 3루수는 ‘몰라’로 바꾸어 리메이크했습니다(유튜브에서 ‘1루수가 누구야’로 검색하면 나옵니다). 이 개그를 패러디해 봤습니다.

백신 수급 총책임자 이름: 누구
백신 협상 책임자 이름: 뭐
백신 전략 책임자 이름: 몰라

동생: 형, 이번에 백신 관련 일 하게 됐다면서? 거기 책임자가 누군지 다 알아?
형: 다 알지. 이름이 좀 희한하다. 잘 들어라. 총책임자는 ‘누구’야, 협상 책임자는 ‘뭐’고, 전략 책임자는 ‘몰라’.
동생: 아까 책임자 이름 다 안다면서?
형: 알지.
동생: 그래, 총책임자가 누구야?
형: 어.
동생: 아니, 총책임자 이름?
형: 총책임자가 ‘누구’야.
동생: 내가 형한테 물었잖아, 총책임자가 누구냐고?
형: 어, 맞다.
동생: (화를 내면서 천천히) 나는 지그음 초옹 채김자 이르믈 알려고 하고 있다.
형: ‘누구’.
동생: 형, 다시 묻는다. 백신 총책임자 이름이 뭐야?
형: ‘뭐’는 협상 책임자.
동생: 협상 책임자가 누구냐고 안 물었다.
형: 총책임자가 ‘누구’야.
동생: 자, 다시 묻는다. 총책임자 이름이 뭐야?
형: 협상 책임자 이름이 ‘뭐’야.
동생: 와 내한테 질문하노? 몰라.
형: 그건 전략 책임자야.
동생: 내가 언제 전략 책임자 얘기했노?
형: 니가 전략 책임자 이름 얘기했는데.
동생: 내가 전략 책임자를 뭐라고 얘기했는데?
형: 아니, ‘뭐’는 협상 책임자라니까.
(후략)

백신 정책 책임 문제를 떠올릴 때마다 ‘1루수가 누구야?’ 개그가 생각납니다. 언론이, 국민이 계속 ‘백신 정책 결정권자가 누구냐?’고 묻는데 아직 아무도 답을 모릅니다. 어떤 때는 대통령 같은데, 대통령이 회의에서 백신 확보 제대로 못 했다고 아랫 사람 질책했다는 뉴스를 보면 책임자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어떤 때는 국무총리 같습니다. 백신 많이 확보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런데 백신 수급 문제 때문에 여론이 악화하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와서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온다는 백신 안 와서 접종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1ㆍ2차 접종 간격 늘리기처럼 다른 나라는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나서서 기자들에게 설명합니다.

국민의 질문은 계속 늘어납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부스터 샷’을 맞아야 하는지, 내년에 맞을 백신은 확보하고 있는지, 다른 나라는 후년용도 계약한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지, 국산 백신 개발한다고 계약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청와대 방역기획관이 하는 일은 무엇인지 등의 의문이 제기됩니다. 도대체 이 일의 총책임자가 누군지, 협상은 누가 하고 있는지, 전략은 누가 세우고 있는지도 여전히 궁금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미스터리는 ‘우리가 왜 이런 것을 몰라야 하느냐’입니다. 이것이 국가 기밀인가요?

한국의 백신 접종 완료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꼴찌로 집계됐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국민은 왜 백신 확보가 되지 않았던 것인지, 누가 잘못을 한 것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단독]韓 백신접종 완료 OECD 꼴찌…콜롬비아에도 뒤졌다

 한국이 8일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율이 가장 낮다는 집계 결과가 나왔다.
국제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가 8일 올린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접종 완료율은 15%(질병관리청의 8일 0시 기준 발표와 동일)다. 반면 지난달 말까지 한국보다 뒤처졌던 뉴질랜드와 호주의 접종 완료율은 각각 16%, 17.1%로 한국을 추월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AP=연합뉴스]

한국처럼 접종을 지난 2월에 시작한 일본과 콜롬비아의 접종 완료율은 각각 32.9%, 25%로 한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처럼 한국이 접종 완료율 최하위를 기록한 건 '백신 부족'이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델타(인도발) 변이 바이러스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2차 접종률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아워월드인데이터 집계에 따르면 한국은 이날까지 세계 평균 접종 완료율(15.3%)에 못 미치는 유일한 OECD 국가이기도 하다. 올 5월 OECD에 가입한 코스타리카도 16.7%로 나타났다. OECD 국가의 절반 가까이가 접종 완료율이 50%가 넘는다. 앞서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접종 시작이 가장 늦었고, 현재 1차 접종률은 40.7%로 OECD 국가 중 하위권(34위)이다.
여러 회원국들은 1·2차 접종률이 함께 상승하고 있지만, 한국은 특히 2차 접종률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공언한 백신 물량이 잇따라 제때 들어오지 않는 점이 근본 원인이며, 1차와 2차 접종의 간격을 늘리는 등 아랫돌 빼서 윗돌에 괴는 식의 접종을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외신들도 한국의 느린 백신 접종 상황을 전했다. 지난달 28일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접종 예약 지연 사태를 전하며 "한국은 초기 백신 확보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결과가 최근 비참할 정도로 뚜렷해졌다"고 꼬집었다. 가디언도 지난달 29일 "한국이 올 여름 델타 변이로 진땀을 빼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대유행 초기 바이러스 확산 억제에 성공했다며 자축했지만 충분한 백신 확보엔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8일 블룸버그 백신 트래커에 따르면 최근 하루 평균 접종 횟수가 일본은 226만9209회인 반면 한국은 30만1333회로 집계됐다. 한국은 백신만 충분하면 하루 100만회 접종도 가능한 의료 역량을 갖췄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난달 22일 호주의 접종 완료율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자 스콧 모리슨 총리는 국민에게 공개 사과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 등에 따르면 모리슨 총리는 "우리는 연초에 기대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백신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며, 우리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진다"고 했다.

한국보다 접종 완료율이 1%포인트 높은 뉴질랜드는 최근 지역사회 감염자가 한 건도 보고되지 않을 만큼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적이다.

델타 변이 확산으로 국가별 백신 확보와 접종률 향상 노력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스라엘에 이어 영국·독일·프랑스는 다음 달부터 고령자, 면역 취약층 등을 대상으로 부스터 샷(3차 접종)을 놓을 방침이며 미국도 계획 중에 있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선 백신 접종률 목표를 기존 70%대에서 90%대로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변이의 강한 전파력을 감안할 때 집단면역 달성을 위해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스위스 등은 모더나 측과 내후년 물량까지 계약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백신 접종률이 높은 일부 국가들은 "코로나19에 감염돼도 중증 및 사망은 크게 감소한다"며 방역 규제를 완화하고도 있다.

정부는 지난 5일 "국산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고, 2025년까지 글로벌 백신 생산 5위 국가로 성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우주 교수는 "당장 올해와 내년 백신 수급 상황도 안갯속"이라면서 "국산 백신에 과도한 기대를 갖거나 먼 미래의 이야기를 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책임자들이 외교력을 발휘해 화이자·모더나 백신을 끌어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국산 백신 개발과 별개로 내년용 백신 물량을 부지런히 확보해야 올 상반기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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