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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경윤의 미래를 묻다

BoT 시대…1인당 배터리 수, 첨단화 지표 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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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배터리의 미래

정경윤 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장

정경윤 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장

‘1인당 배터리 보유 수.’ 앞으론 이런 게 개인 첨단화의 지표가 될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나부터 세어본다. 일단 노트북과 스마트폰, 시계 속 배터리는 기본이다. 최근에 마련한 무선 이어폰에도 배터리가 있다. 가방 속 넣어둔 발표용 레이저포인터, 보조 배터리, 자동차의 배터리까지…. 그다지 첨단화되지 않은 필자가 보유한 배터리만도 7개다.

한·중·일 경쟁에 미국·유럽 가세 #리튬이온 넘어 전고체전지 개발 #자동차 제조사도 배터리 경쟁 나서 #원천기술 바탕, 상용화 전략 시급

수년 전부터 ‘BoT’라는 신조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의 조어법을 본뜬 사물배터리(Battery of Things)의 영어 약자다.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4차 산업혁명 시대, IoT의 사회가 깊어질수록 ‘1인당 배터리 보유 수’는 늘어날 것이고, BoT란 표현 또한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BoT의 시대, 세계는 지금 시장의 급팽창과 함께 ‘배터리 전쟁’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까지가 한·중·일 삼국지였다면,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까지 뛰어들면서 무한경쟁의 배터리 춘추전국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대표적인 배터리 기업으로는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 일본은 파나소닉, 중국은 CATL·BYD 등이 있다. 중국의 경우 풍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많은 기업이 자동차용 2차전지에 투자를 하고 있고, 풍부한 원료,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일본의 경우 과거 90년대의 독점식 호황기는 지나가고, 셀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경쟁력이 예전보다 약화한 양상으로 보인다. 하지만 파나소닉이 미국 테슬라와 손잡고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아직도 자동차용 2차전지 시장에서는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다. 전지에서의 호황기는 과거만 못하지만 아직도 부품·소재에서는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북동부 썬더랜드의 닛산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생산라인의 차량을 최종 점검 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메이커 닛산은 지난 월1일 영국에 자사 전기차를 위한 배터리 공장 ‘기가팩토리’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영국 북동부 썬더랜드의 닛산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생산라인의 차량을 최종 점검 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메이커 닛산은 지난 월1일 영국에 자사 전기차를 위한 배터리 공장 ‘기가팩토리’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AFP=연합뉴스]

미국엔 배터리 관련 스타트업이 많이 생겼다. 리튬이온전지보다는 전고체전지, 리튬메탈 관련 등 차세대 쪽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양상이다. 유럽도 자동차 메이커들이 전기차 시장 급성장에 발맞춰 ‘배터리 내재화’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는 매우 당연한 수순이며 거꾸로 생각하면 전기자동차에서 배터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전기자동차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배터리가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에서의 엔진 역할을 한다. 즉, 가장 중요한 부품이며, 우수한 배터리 기술을 가진 회사가 좋은 자동차 회사가 되는 것이다. 자동차업체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해야 할 형편이다. 지금 좋은 자동차 회사라고 얘기하는 회사들이 엔진 기술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회사들인 것과 같은 이치다. 대표적으로 독일 폴크스바겐이 전기차와 배터리에 집중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오는 2025년 시장에서는 독보적으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측이 되고 있다. 물론,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있을 수 있다. BMW나 혼다처럼, 원래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던 기업이, 우수한 엔진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 굴지의 자동차 회사가 되었듯이, 우수한 배터리 기술을 가진 기업이 전기자동차 사업에 뛰어드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볼 때 전기에너지는 매우 중요한 에너지 중 하나다. 실제론 다양한 에너지원이 존재하지만, 첨단사회에 다가갈수록 최종엔 전기에너지로 변형해 사용하고 있다. 과거, 콘센트에 꽂아서 사용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으나, 배터리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동하면서 전기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우선적으로는 스마트폰·노트북 등 소형 전자기기 중심으로 우리의 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주었고, 이제는 그 시장이 전기자동차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선은 전기자동차 시장에 의해 배터리 시장의 변화가 크게 나타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전기자동차 충전을 위한 인프라 관련 시장, 폐차로부터 나오는 폐배터리 관련 시장들이 크게 변화가 있을 것이다. 미래에는 전선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더 많은 기기가 출현할 것이고, 우리의 생활 방식이 더욱더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여 가기 때문에 배터리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된다. BoT 시대로 전환되면 대부분의 기기에 배터리가 탑재되면서, 또 한 번의 시장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때에는 웨어러블, 신축성, 투명 등의 특성을 가진 배터리에 대한 요구도 커질 것이다.

글로벌 전기차 및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전망

글로벌 전기차 및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전망

세계 각국은 현재 대세인 리튬이온전지 이후 세대의 배터리 연구에도 매진을 하고 있다. 배터리는 다양한 용도에 사용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한가지 배터리 시스템이 모든 곳에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각각의 용도에 필요한 스펙에 맞는 다른 종류의 배터리들이 사용될 것이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로는 우선 ‘전고체 전지’를 들 수 있다. 전고체전지는 리튬이온전지의 작동 원리와 유사하면서 가연성의 액체전해질을 불연성의 세라믹 등 고체전해질 소재로 바꾼 것으로, 극강의 안전한 전지라 할 수 있다. 성능(일충전주행거리)도 상용화할 경우 승용차 기준으로 지금의 2~3 배 이상 거리를 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자율주행 기능이 더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인 만큼, 배터리 소모 또한 지금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전고체전지는 일본의 도요타가 가장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도요타에서는 2025년에 프로토 타입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했으나, 실제 상용화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전고체전지 관련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삼성종합기술원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등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출연연과 대학에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리튬황전지·금속공기전지·레독스흐름전지 등 다양한 차세대 2차전지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차전지 선도국인 한·중·일과 원천 기술 선진국인 미국이 활발한 연구 활동을 보이고 있고, 유럽 등에서 추격을 하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의 리튬이온전지는 향후 10~15년 정도는 주도권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년쯤 뒤에는 다양한 차세대 배터리가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고체전지·리튬황전지·나트륨이온전지가 그 주인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차세대 배터리가 시장에 들어온다고 해서 리튬이온전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차세대 배터리가 현재 시장 일부를 대체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기존 납축전지, 니켈수소(Ni-MH) 전지가 있던 시장에 리튬이온전지가 나왔을 때도 유사한 시장 팽창이 있었다.

배터리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전기화학 반응을 기반으로 하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기존의 배터리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좀 더 크다고 생각되나, 새로운 배터리 시스템에서는 신생 기업이 출현해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기대하기에는 한국이 세계 1위의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였으면 좋겠으나, 중국·일본과의 경쟁, 미국·유럽의 신규 진입에 대한 견제 등은 지속적으로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배터리 산업에서 현재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2차전지 산업은 셀 기술 관점에서는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여러 부분에서 취약한 부분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부분이 원천 기술력과 부품·소재 기술력이다. 리튬이온전지의 소재 및 공정 원천 기술은 대부분 미국과 일본이 가지고 있다. 중국은 풍부한 원료와 노동력을 이용해 값싼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은 비록 셀 제조 기술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부품·소재 기술의 취약으로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영향을 평가하였을 때도 일본이 수출 규제 품목을 확대할 경우 2차전지 소재·부품 중 적지 않은 수가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 전지 제조업체들이 생산을 멈출 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단 수출 규제와 같은 극단적인 경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2차전지 사업의 건전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 부품·소재 산업의 육성이 필수적이다.

원천 기술력은 리튬이온전지뿐만 아니라 차세대 2차전지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원천기술이 강한 미국과 일본의 기술이 만나 리튬이온전지가 상용화되었듯이, 리튬이온전지 이후 차세대 2차전지도 원천 기술력을 보유한 나라에서 기술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원천 기술력은 학·연의 원천 기술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때 강해질 수 있으며, 이러한 투자는 인력 양성과도 직접적으로 연결이 된다.

2차전지 산업은 한국의 미래 주력 먹을거리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매우 자명하다. 따라서 2차전지 산업을 잘 성장시키고 기술 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전략 수립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그동안 우리나라의 투자는 주로 상용화의 관점에서만 이루어졌는데, 미래 시장에서의 기술 우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가 매우 중요하다. 튼튼한 원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실용화, 상용화로의 전략적인 연계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2차전지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

◆정경윤

2차전지 전문가다. 연세대 금속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브룩헤븐국립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2006년 KIST에 입사했다. 2014년부터 KIST의 에너지저장연구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2차전지 연구를 하고 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KIST스쿨에서 에너지환경융합 전공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