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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동상 걸리고도 웃었다…마지막 등정서 별이 된 김홍빈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일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체육관에 차려진 ‘불굴의 산악인’ 김홍빈 대장의 분향소에는 주말 내내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김 대장의 유품인 안전모와 방한화 등 등산 장비가 추모객을 맞이했다. 산악인들과 광주시민들은 국화꽃을 바치는 순간까지도 그가 돌아오지 못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14좌 완등 마치면 나누는 삶 살겠다”던 생전 유지

“이번이 마지막 등정이었을 것”

지난 5일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에 김홍빈 대장을 추모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에 김홍빈 대장을 추모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김홍빈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인 드날리(당시 명칭 매킨리) 등반 당시 동상으로 열 손가락을 모두 잃고도 장애인 최초로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인물이다.

때문에 ‘불굴의 산악인’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달 18일 브로드피크 정상을 정복하고 하산하던 도중 해발 7900m 지점에서 조난당했다. 이후 유가족들이 2차 사고를 우려해 수색 중단을 요청한 뒤 지난 4일부터 산악인장으로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고인의 분향소를 지키던 피길연 광주시산악연맹회장은 이번 브로드피크 등정이 “이번이 고인의 마지막 등정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장이 이번 등정을 떠나기 전 “히말라야 14좌 완등까지 마치면 높은 산은 안 가고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을 전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면 나누는 삶 원했다”

지난 4일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에 마련된 김홍빈 대장의 분향소에 한 시민이 조문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에 마련된 김홍빈 대장의 분향소에 한 시민이 조문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피 회장은 “김 대장이 ‘지금까지 히말라야 신들이 나의 도전을 받아줬는데 더 이상은 안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며 “마지막 등정에서 돌아오면 남은 삶은 청소년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전정신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것이 고인의 뜻”이라고 했다.

피 회장은 김 대장이 조난 당시 전화를 걸어 자신을 대신해 구조요청을 부탁했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다. 그만큼 더욱 이번 사고가 믿겨지지 않는다고 한다.

분향소 곳곳에는 그의 유품 외에도 생전 사진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 도전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의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분향소 한쪽에는 김 대장이 추위 때문에 얼굴에 동상을 입은 상황에서 웃고 있던 사진도 있었다.

“김홍빈 기념관 만들어야” 한 뜻

지난 4일 김홍빈 대장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에 차려진 가운데 유가족이 고인의 영상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4일 김홍빈 대장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종합체육관에 차려진 가운데 유가족이 고인의 영상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동료 및 선후배 산악인들을 중심으로 김 대장의 도전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홍빈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도 모이고 있다. 김 대장이 생전에 히말라야 등을 등정하면서 몸소 보여줬던 도전정신이 잊혀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4일 김 대장의 장례 절차가 산악인장으로 시작된 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분향소를 찾아 체육훈장 청룡장 추서식도 거행된 만큼 추모 분위기에 더해 고인의 뜻을 기릴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여론도 조성되고 있다.

기념관 건립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오는 8일 오전 10시 김 대장의 영결식이 끝난 뒤 시작될 전망이다. 피 회장은 “고인이 실천해왔던 도전정신을 잊지 않고 이어나가려면 기념관 건립 등에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 남은 산악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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