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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월세 60만원 역세권 아파트의 꿈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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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31면

김창우 사회 에디터

김창우 사회 에디터

대권 도전에 나선 이재명 경기지사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기본주택이다. 무주택자 누구나 싼값에 30년간 거주할 수 있는 역세권 아파트 100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중산층 이상이 살 수 있도록 고급화하고, 면적도 85㎡까지 넓히는 것이 기존 공공임대주택과의 차이다. 이 지사는 지난 3일 “임대료가 60만원으로 기존 아파트의 3분의 1 수준인 기본주택을 도입하면 6억~7억원을 대출받아 평생 빚 갚느라 허덕이게 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원 조달방안이다. 경기주택도시공사(GH)에 따르면 조성원가가 3.3㎡당 2000만원인 토지에 용적률 500%로 1000세대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 전용면적 74㎡(30평)의 분양가는 2억7700만원이 된다. 이 지사는 “30평형대 장기공공임대주택의 가치가 10억원인데, 이를 담보로 5억원 정도를 빌릴 수 있으니 이 자금으로 기본주택을 지으면 실제로는 재원 부담 없이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땅도 없고 지을 돈도 없지만 #실현돼도 인생 건 로또 추첨일 뿐

기본주택을 풀어쓰면 이렇게 된다. 정부가 주택도시기금 등을 활용해 연 1% 정도의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면, 공공사업자가 아파트를 지어 저렴하게 임대한다. 월세를 받아 이자만 부담하며 운영하다가 건물이 낡아 재건축이 필요해지면 땅을 팔아 빚을 갚으면 된다. 역세권이라 땅값이 오를 테니 추가 대출을 내서 다시 지어도 된다.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나중에 갚아야 하는 융자 형태니 재정 부담이 없다.

언뜻 듣기에는 그럴싸한데 뭔가 설명이 복잡하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역세권 땅에 무슨 수로 정부가 아파트를 짓나. 지을 수 있다 해도 제값에 팔고, 그 돈으로 임대주택을 지으면 되지 않나. 원래 이치에 잘 맞지 않는 사안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려면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이럴 때는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따져보는 게 정석이다. 정치적인 유불리는 차치하고, 기본주택은 들어가 사는 사람이 무조건 이득이다. 손해는? 들어가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나눠서 본다. 예산이건 빚이건 간에 결국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으로 메꾸기 때문이다.

수도권 1000만 가구 중 절반이 전세나 월셋집에 산다. 기본주택 100만 가구를 공급해도 경쟁률이 10대1이다. 결국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소수에게 몰아주는 셈이다. 인생 30년을 건 로또 추첨이다. 그나마 십시일반이면 다행이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근로소득세의 72.5%를 상위 10%가 냈다. 전형적인 ‘돈 내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의 냄새가 난다. 아니면 현재 청약제도처럼 정부가 기준을 제시해서 입주자를 고를 수도 있다. 살짝 조건을 만지기만 하면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동물농장』을 현실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7년 재임 당시 무주택 시민에게 주변 시세의 80% 이하로 공급해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을 도입했다. 인기가 좋아 지난해 말 제39차 입주자 모집에서 550가구 공급에 1만1669명이 몰렸다. 지금까지 3만 가구 정도 공급됐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2014~2019년 시프트를 운영하면서 1조2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재무 부담이 커서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전세도 이 지경인데 3분의 1 월세로 100만 가구라니. 중고차 한 대 살 때도 반값에 팔겠다면 의심부터 드는 것이 정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빚 128조원의 대부분이 임대주택을 지어서 생겼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차라리 가랑잎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시라”고 비판한 것도 무책임한 공약(空約)을 보는 허탈한 심정에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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