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 사연 들어주는 인기없는 만화가, 바로 제 자화상이죠”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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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쥬드 프라이데이의 ‘굿 리스너’. [네이버웹툰]

쥬드 프라이데이의 ‘굿 리스너’. [네이버웹툰]

밤마다 미처 제대로 전하지 못한 사연을 안고 오는 사람들과 이것을 들어주는 인기 없는 만화가의 이야기. 네이버 웹툰 ‘굿 리스너’의 구성이다.

‘굿 리스너’ 연재 쥬드 프라이데이
수채화풍 웹툰, 담담한 문체 화제
“건조한 세상에 위로·용기 주고 싶어”

사내 커플이던 여자친구가 회사 선배와 교제하는 직장인, 고부 갈등을 겪고 남편과 헤어진 주부, 학급 내 왕따와 절친이 되는 바람에 고초 겪는 초등학생…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내용. 하지만 사연의 주인공이 망자라는 ‘반전’이 숨어있다. 망자의 사연에 길을 나서는 만화가는 남은 이의 해원(解冤)을 맡게 된다.

매일 밤 달님이 작은 다락방의 가난한 화가에게 찾아와 자신이 본 풍경을 이야기해주는 안데르센의  『그림 없는 그림책』을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은 5월 8일 첫 회 이래 평균 9.96(10점 만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 중이다. “담담한 문체와 은은한 그림체가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누워서 보다가 베개를 다 적셨다. 너무나 위로가 된다” 등 호평이 이어진다.

쥬드 프라이데이

쥬드 프라이데이

작가 쥬드 프라이데이(43·본명 현종욱)는 2011년 ‘길에서 만나다’로 데뷔하고 이번이 세 번째 작품. 1일 쥬드 프라이데이를 e메일로 만났다.

‘굿 리스너’를 기획한 계기는.
“독자의 고민, 사연을 읽어주는 같은 제목 팟캐스트를 2016년 2월부터 1년 5개월 운영했다. 언젠가 옴니버스로 이런 종류의 만화를 그려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인기 없는 만화가’는 본인인가.
“맞다. 관찰자의 시점을 가진 채 사연을 전하는 이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쉬운 캐릭터가 만화가다.”
파스텔톤 그림체와 서정적 이야기로 죽음을 다루는 게 독특한데.
“어느 날 TV에서 아들이 젊은 나이에 사망한 뒤 평생을 괴로워하는 부모님을 보며 과연 죽은 아들이 그것을 원할까 생각했다. 망자를 볼 수 있는 만화가를 만들어, 망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편지처럼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수 있다면 어떤 위로를 줄 수 있겠다 싶었다.”
수채화 웹툰이 독특하다는 평이다.
“미대에 진학했어도 영화에 관심이 컸다. 단편영화 콘티를 많이 그리다 보니 만화로 발전한 것 같다. 2011년 첫 작품 ‘길에서 만나다’에서 서울의 풍경을 수채화로 표현하면서 힐링이 됐다. 태블릿이 없어 스케치북, 고체물감 세트를 늘 휴대했다. ‘진눈깨비 소년’을 5년간 수채화로 그리다 몸에 무리가 많이 왔다. 이번 작품부터 협업 가능한 디지털 작업으로 바꿨다.”
충무로를 꿈꿨다고 했는데, 이젠 웹툰 작가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혼자 조용히 영화 찍는 기분으로 만화를 그린다. 내 만화가 영화 콘티 같다는 의견도 듣곤 한다. 시나리오도 계속 준비하고 있고, 회사에 다니면서 만화를 시작한 것처럼 언젠가 만화를 그리며, 소박한 영화를 찍는 계절이 곧 오리라고 꿈꾸고 있다.”
서정적인 풍경, 대사에 위로받는다는 평이 많다.
“‘중경삼림’ ‘타락천사’ 등 독백이 많고 캐릭터의 내면을 다룬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또 대사나 내레이션이 길고, 수채화로 많은 풍경을 보여주니 그런 것 같다.”
작품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제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고 연대감을 느끼며, 이들의 선택과 고민, 대결과 실패, 성장을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기를 희망한다. 지금처럼 차갑고 건조한 시대에 이런 만화 하나 정도는 따뜻한 이야기를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쥬드 프라이데이라는 필명은 어떤 의미인가.
“토마스 하디의 소설  『비운의 쥬드』의 주인공과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토인 ‘프라이데이’를 합쳤다.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은 고등학교 절친의 별명이었다. 얼굴이 까무잡잡해서 내가 프라이데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 친구의 잔영이 오랫동안 제게 남아있어서, ‘쥬드 프라이데이’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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