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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민우가 만든 '요코하마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2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녹아웃스테이지 2라운드 한국과 이스라엘의 경기. 1회초 한국 선발투수 김민우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치며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야구 녹아웃스테이지 2라운드 한국과 이스라엘의 경기. 1회초 한국 선발투수 김민우가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치며 더그아웃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화 오른손 투수 김민우(26)에겐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1순위에 지명된 대형 유망주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프로 2년 차인 2016년 5월 1일 이후 1군 등판 기록은 멈췄다. 어깨 관절와순 손상이 이유였다. 고등학교 때 이미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접합 수술)를 받은 이력이 있던 그에게 어깨 부상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김민우는 곧바로 일본으로 넘어갔다. 현지에서 한 달 정도 검진과 치료를 병행했다. 요코하마, 지바, 후쿠오카를 돌며 어깨 상태를 체크했는데 대부분의 결론이 부정적이었다. 투수에게 어깨 관절와순 부상은 상황에 따라 유니폼을 벗을 수 있는 '사형 선고'로 받아들여진다. 팔꿈치 수술보다 재활이 어렵고 복귀하더라도 재발 우려도 크다. 실제 김민우는 일본 병원에서 "투수를 더 하기 힘들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투수가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도쿄올림픽 야구 경기가 열리는 요코하마스타디움은 김민우에게 잊을 수 없는 장소다.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는 5년 전 어깨 관련 진단을 받고 미래를 고민했던 곳이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김민우는 요코하마스타디움 인근에 숙소를 두고 움직였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요코하마스타디움을 거닐며 불멸의 밤을 보내곤 했다. 선수 생활에 대한 의지를 다졌던 공간이기도 하다.

김민우는 고심 끝에 수술이 아닌 재활을 선택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극복해  2017년 9월 15일 1군 마운드를 다시 밟았다. 이어 2019년을 기점으로 선발 투수로 자리 잡았고 올해 인상적인 전반기(9승 5패 평균자책점 3.89)를 보냈다. "투수를 더 할 수 없다"는 비관적 검진 결과를 극복했다. 활약에 힘입어 도쿄올림픽 최종엔트리에 승선해 데뷔 후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에 차출됐다. 공교롭게도 올림픽 야구가 열리는 주무대가 요코하마. 그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민우는 지난달 31일 미국과의 조별리그 2차전 불펜 투수로 등판해 1과 3분의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어 2일 이스라엘과의 녹아웃 스테이지 2라운드에선 선발 투수로 나와 4와 3분의 1이닝 2피안타 무실점 쾌투했다. 1회부터 11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할 정도로 안정감이 대단했다. 대표팀은 김민우의 호투에 힘입어 이스라엘을 11-1, 7회 콜드게임으로 제압하고 준결승 무대에 안착했다.

김민우는 경기 뒤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에서 요코하마와 관련된 질문을 받자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잠시 뜸을 들인 그는 "여기서 던질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이 기회가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5년 전 아픔의 기억, 김민우는 요코하마를 약속의 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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