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출판사 아들 날벼락…부친 유언 보니 한푼도 안줬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3 05:00

미국 대형 출판사 스콜라틱스 CEO 리처드 로빈슨이 지난 6월 5일 갑자기 숨졌다. 사진은 2019년 한 행사장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대형 출판사 스콜라틱스 CEO 리처드 로빈슨이 지난 6월 5일 갑자기 숨졌다. 사진은 2019년 한 행사장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대형 출판사를 경영하던 고령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전 재산을 몇 년 전 헤어진 30세 연하 애인에게 물려주겠다고 유언했다면? 벤 로빈슨(34)과 리스 로빈슨(24) 형제에겐 현실의 일이다. 이들의 아버지, 리처드 로빈슨 미국 스콜라스틱 출판사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월 84세를 일기로 갑자기 사망했는데, 유언장을 열어보니 "나의 파트너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이올 루체스에게 전재산을 남긴다"는 게 요지였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가 지난 1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유언장은 2018년 작성됐다. 두 아들은 반발하고 있다. 루체스는 이 출판사의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맡고 있다.

교육 콘텐트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스콜라스틱 출판사는 『해리포터』, 『헝거게임』 시리즈 등을 미국 시장에 들여와 큰 성공을 거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까지만 해도 20여년 간 시가총액 12억 달러(약 1조3800억원)를 유지했다. 지난해 매출은 코로나19의 여파로 13% 줄어들었지만 13억 달러로 나름 선전했다.

WSJ에 따르면 이번에 유언장에 등장하는 전재산 규모는 12억 달러 규모의 스콜라스틱 경영권과 함께, 의결권이 있는 클래스A 주식 등 주식 약 300주 등이다. 로빈슨이 산책 중 갑자기 숨진 지 약 2개월 만이다.

로빈슨은 아버지 모리스 로빈슨이 1920년 설립한 스콜라스틱에서 1975년부터 46년간 CEO를 지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그만두고 1962년 스콜라스틱에 합류했다.

2018년 작성된 유언장…“몇 년 전 헤어져”  

이올 루체스 스콜라틱스 이사회 의장 겸 최고전략책임자. 사진 스콜라틱스

이올 루체스 스콜라틱스 이사회 의장 겸 최고전략책임자. 사진 스콜라틱스

로빈슨의 가족과 스콜라스틱 전·현직 직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연인 관계였다. 예상치 못한 로빈슨의 유언에 당황한 유족은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다.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WSJ에 “루체스가 로빈슨의 가족에게 클래스A 주식 일부를 양도하거나 부동산 일부를 내어주는 방식으로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로빈슨은 생전 후계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의 재산이나 사생활은 가까운 지인들도 잘 모를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전 재산을 루체스에게 넘기는 이유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로빈슨과 루체스는 몇 년 전에 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스콜라스틱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된 루체스는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로빈슨과 루체스의 관계는 사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한다.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는 루체스는 로빈슨과도 종종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스콜라스틱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그들이 보완적인 관계로 기억한다. 스콜라스틱의 자회사 클루츠의 사장을 지낸 스테이시 렐로스는 루체스에 대해 “주관이 뚜렷하다”고 했고, 스콜라스틱 이사를 지낸 마리안 카포네토는 “강하고 똑똑한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루체스는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으로 국적은 캐나다지만,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다. 1991년 스콜라스틱의 자회사인 스콜라스틱 캐나다에 북클럽 부편집장으로 합류했다. 스콜라스틱 캐나다 공동사장을 거쳐 2014년 최고전략책임자로 임명되면서 미국 본사에도 이름을 알렸다. 2016년 스콜라스틱 캐나다 단독 사장이 된 후 2018년부터 스콜라스틱 엔터테인먼트 사장을 겸직했다. 디지털 사업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특히 관심이 많다고 한다.

“가족 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유족, 법적 조치 검토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의 세계 최대 해리포터 기념품 판매점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 AFP=연합뉴스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의 세계 최대 해리포터 기념품 판매점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 AFP=연합뉴스

로빈슨의 가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장남 벤 로빈슨은 WSJ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유언장 내용에 대해 “상처에 소금을 들이붓는 느낌”이라고 했고, 영화 제작자인 동생 리스 로빈슨 역시 “아버지의 결정은 예상도 못했고 충격적”이라며 “원만하게 합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콜라틱스 경영에 관여한 적은 없다.

이들의 어머니 헬렌 벤햄은 1974년 입사한 후 2003년 이혼 전까지 약 30년간 스콜라틱스에서 일했다. 벤햄은 WSJ에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스콜라스틱에서 살고 숨쉬었다”며 “남편도 ‘당신이 나보다 회사를 더 챙기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로빈슨에 대해선 “일하지 않는 모든 시간은 우리와 함께 보냈다”며 “주말뿐 아니라 맨해튼 집에서도 정기적으로 만났다. 그는 가족에게 돌아오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로빈슨과 가족은 몇 년 전부터 2019년 말까지 정기적으로 만났다고 한다. 로빈슨 유족은 서면 부고에서 “코로나19는 로빈슨을 스콜라스틱스 뉴욕 본사에서 홀로 12시간씩 일하도록 했다”며 “주말에 그가 ‘낙원’이라고 부르는 섬에 와서 시간을 보내는 게 그의 유일한 휴식이었다”고 밝혔다. 로빈슨은 전 아내 벤햄과 작은아들과 함께 산책하던 중 갑자기 숨졌다. 유족은 그러나 로빈슨의 사망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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