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文정부 절정' 전대협의 반전···민주당 빅3도 존재감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존재감이 사라진 2002년 이후 첫 대선.”
더불어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한 보좌관은 이번 대선의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민주당 의원 171명 중 80년대 각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냈거나 전대협 간부 이력을 지닌 의원이 초선부터 4선까지 20명이 넘지만 대선 후보 경선 주자 6명 중엔 1명도 없는 상황에 대한 조망이다. 이들 중 다수가 지지한다고 볼만한 후보도 현재 없다.

80년대 전대협 활동 당시의 이인영 의원.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그는 대표적인 '운동권'이자 '586' 정치인이다.

80년대 전대협 활동 당시의 이인영 의원.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그는 대표적인 '운동권'이자 '586' 정치인이다.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반년 앞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대협 빅3’(이인영 통일부장관,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우상호 의원)가 대선 국면에서 보일 움직임은 당내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 장관은 꽉 막힌 남북관계의 활로를 찾지 못한 채 때를 놓쳤고 2019년 11월 갑작스런 정계은퇴를 선언한 임 전 실장은 이를 번복할 명분을 결국 구하지 못했다. 우상호 의원은 일찌감치 서울시장 재도전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경선에서 패배한 뒤 부동산 문제로 당에서 탈당 권유까지 받는 궁색한 처지에 몰렸다. 우 의원은 최근 유튜브 채널을 늘리는 등 공개 활동을 펴고 있지만 “해설가 역할”(수도권 초선 의원)에 그치고 있다.

전대협 출신 의원들 상당수는 경선 국면에서 아직 중립지대에 머물러 있다. 직전 원내대표인 김태년(1기 부의장), 서울시당위원장인 기동민(5기·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의원 등은 경선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송갑석(4기 의장) 전략기획위원장,박완주(3기·성균관대 부총학생회장) 정책위의장,한병도(3기·원광대 총학생회장)·김성환(1기) 원내수석 등은 당직에 묶여 있다. 다른 주요 인사들은 각 캠프로 흩어졌다. 김영진 의원(4기·중앙대 총학생회장)은 이재명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았고, 김승남(1기 부의장, 전남대 총학생회장)·허영(6기) 의원은 이낙연 캠프의 조직 파트 보직을 맡았다. 전대협 간부 출신인 아니지만 ‘운동권 86그룹’으로 분류된 조승래·조오섭 의원은 정세균 캠프에서 각각 충청과 광주·전남 조직을 책임진다.

KBS의 다큐 6부작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1부 '우리의 소원은'에서 한 장면. 당시 전국대학생협의회(전대협)의장이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인터뷰하는 도중 황급히 자리를 뜨는 촬영 원본이 담겼다. [사진 KBS 홈페이지 캡처]

KBS의 다큐 6부작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1부 '우리의 소원은'에서 한 장면. 당시 전국대학생협의회(전대협)의장이었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인터뷰하는 도중 황급히 자리를 뜨는 촬영 원본이 담겼다. [사진 KBS 홈페이지 캡처]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대표는 “운동권 86그룹은 결국 대선 주자를 배출하는데 실패했다”며 “앞으로도 학생운동을 같이 한 형, 동생이라고 누구를 밀어줄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점에서 흩어진 전대협

전대협 출신 인사들이 각자 도생의 길을 가는 건 이들의 정치이력 문재인 정부에서 절정을 맞은 것에 비하면 극적 반전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비서실장에 임종석(3기 의장) 전 의원을 임명한 뒤 ‘운동권 86’ 그룹은 당·청은 물론 공공기관의 주요 자리를 차지했다. 한병도(3기·조국통일위원장)의원과 최재성(2기·동국대 총학생회장) 전 의원이 잇따라 정무수석에 임명됐고 친문 핵심들 중에서도 국정상황실장을 거친윤건영(5기·국민대 총학생회장) 의원과, 백원우(2기·연대사업국장) 전 민정비서관이 전대협 출신이다. 21대 민주당 의원 중엔 전대협 간부 이력을 공개한 의원은 역대 가장 많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이인영, 우상호, 오영식(2기 의장), 임종석 등이 젊은 피로 영입되면서 전대협의 제도권 진출의 문이 열렸다. 이들이 민주당의 주류로 안착한 건 17대 총선 이후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을 타고 치러진 선거에서 김태년, 백원우, 우상호, 이인영, 정청래, 정봉주, 최재성, 한병도 등 전대협 간부 출신 12명이 첫 금배지를 달았다.

전남대 민주광장에서 전대협-제4기 출범식을 갖는모습.

전남대 민주광장에서 전대협-제4기 출범식을 갖는모습.

한때 급진적 입법 시도와 관료집단과의 좌충우돌 등으로 ‘탄돌이(실력이 부족하지만 탄핵 역풍으로 운 좋게 당선된 국회의원)’라고도 불렸던 이들은 야당이 된 뒤로도 집단적 결속력을 바탕으로 손학규, 정세균, 한명숙, 이해찬 대표 체제를 만들고 유지한 중심축이었다. 그러던 '구국의 강철대오'(전대협의 구호)는 한순간 뿔뿔이 흩어졌다.

"미래 못 보이고 기득권화"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 전대협이 정치권에 대거 입성하면서 새 바람을 일으킨 건 맞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중요한 자리를 하나씩 맡으면서 더 이상 새 바람을 일으킬 거란 기대를 하기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대표는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이 과거에 갇혀 살면서 진화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며 “정치를 운동으로 이해하는 20~30년 전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 하면서 다음 세대에 추월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대협 출신 한 비수도권 의원은 “MZ세대가 전대협 세대를 불공정, 기득권 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전대협 출신인 한 재선 의원은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진전을 동질적인 목표로 했던 전대협은 시대적인 과제를 일부 해결했으니 이제 다음 정치 세대에게 앞자리를 양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