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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명준의 미래를 묻다

10년 뒤 6G 세상, 첨단 기술에 선호하는 미래를 담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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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한국의 이동통신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2007년 와이브로 국제표준, 2019년 세계 최초 5세대 상용서비스 등 굵직한 성과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추격자(Fast follower)의 한계로 인해 선도자(First mover)로서 완전히 자리매김을 못 하고 있다.

이동통신, 10년 주기로 세대 변화 #6G는 5G보다 10배 이상 빠를 것 #하늘·바다에도 초고속 통신시대 #사회문제 해결 등 역할 확장돼야

겉으로 본다면, 이동통신은 한국이 정보통신 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ICT 기업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전 세계 매출에서는 1위이지만, 이익점유율에서는 여전히 애플에 뒤진다. 기지국 장비의 세계시장 점유율에서는 삼성전자가 5G에서 경쟁의 판도를 바꾸며 드디어 세계 3위 안에 진입했지만, 아직 세계 1위 화웨이와 격차가 크다.

어찌 됐든 이제는 글로벌 선도자가 되어 추격자를 따돌리는 것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추격자와 선도자 기준은 ‘스스로 미래를 상상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본다. 예컨대, 삼성이 스마트폰 매출 1위에서 안주하지 않고, 그간 이동통신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던 밀리미터(㎜)파 대역을 5G의 ‘게임 체인저’로써 사용해 경쟁의 판도를 바꾼 사례도 이통통신 장비 분야에서도 선도자가 되고 싶다는 상상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공학 분야의 주요 전공을 보면 각자 기본기가 있다. 기계·항공·조선에서는 고체·기체·유체역학이 그것이다. 전기·전자·통신 전공에서는 미분 방정식이고, 경영·산업공학 전공에선 통계기법(OR)이다. 그러면 컴퓨터·소프트웨어 전공에서는 그 기본기가 무엇인가. 수학이나 통계학일까. 필자가 직접 심사했던 논문이나 읽었던 논문을 살펴보면 주제와 관계없이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분석하여 모형화하고 그것을 풀어내는 ○○체계/해법(System/Solution)을 제안하고자…”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추상(abstraction) 능력이다. 여기에 ‘상상력’을 더해보자.

김명준의 미래를 묻다

김명준의 미래를 묻다

상상력과 추상력은 인간만이 가진 지적 능력이다. 이 두 능력은 상호 작용하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우리가 복잡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 추상력이라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핵심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상상력 때문에 가능하다. 프랑스 유학 시절 필자의 지도교수는 “당신의 생각을 꺼내 보여 주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필자의 상상력과 추상력을 키우기 위한 담금질이었다. ‘당신의 생각’은 남의 것을 따라가지 말고 상상력을 통해 먼저 나만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라는 것이고, ‘보여 줘요’라는 말은 추상력을 통해 그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핵심만 설명해달라는 의미였다.

10년 후 이동통신을 예측하는 것은 굳이 상상력과 추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1980년대 시작된 제1세대(G) 이동통신 이후, 10년 주기마다 기술발전과 더불어 세대가 하나씩 올라가는 규칙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의 기술과 서비스 측면에서의 규칙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동통신 기술은 ‘더 빠른 전송 속도’와 ‘더 넓은 서비스 범위(coverage)’를 위해 발전해왔다. 이동통신 서비스 광고 마케팅에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LTE(Long Term Evolution)이라는 전문 기술용어를 사용해 속도를 강조할 만큼 빠른 전송 속도는 이동통신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이동통신의 세대는 전송 속도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1G는 수십 kbps급 전송 속도에서 시작해 2G에선 10배 빠른 수백 kbps급, 3G에서는 100배 빠른 수 Mbps급, 4G에서 10만 배 빠른 Gbps급, 5G가 100만 배 빠른 수십 Gbps급 전송 속도를 갖는다. 전송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이동통신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도 1G에서 수백 ㎒ 대역을 사용했으나 5G에서는 밀리미터파 대역(28㎓)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이런 발전 추세에 따라 2030년 상용화 예정인 6G는 5G 대비 최소 10배 이상 빠른 수백 Gbps급 전송 속도와 28㎓ 대역보다 더 높은 수백 ㎓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서비스 범위 측면에서 보면 지상은 물론 인공위성과 연결되어 하늘이나 바다에서도 초고속 통신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이동통신 서비스는 ‘활용되는 산업 영역’과 ‘연결되는 대상 범위’를 확장해왔다. 1G는 사람 사이의 음성통화가 전부였기에 산업 영역도 이동통신 장비 및 단말기에 머물렀다. 2G부터 시작된 디지털 통신 기술 덕분에 이동통신 서비스가 다른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2G는 전송 속도가 느려서 짧은 문자 서비스(SMS)만 가능했다. 하지만, 음성통화 중심의 이동통신에 디지털 데이터 서비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개념 덕분에 오늘날 카톡과 같은 대화방 서비스가 가능했다. 3G부터 고속으로 디지털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지면서 이동통신 서비스가 활용되는 산업 영역이 대폭 확장됐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동영상과 같은 데이터 서비스를 받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와 무선의 편리함이 만나서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창출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3G에서 휴대 단말기와 개인용 컴퓨터가 만나 스마트폰이 탄생하였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 서비스가 컴퓨터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4G에서 모바일 단말기와 디지털 콘텐츠가 만나 미디어 산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4G가 컴퓨터·미디어와 같은 ICT 산업 내에 머물렀다면, 5G부터는 ICT 산업을 넘어, 교통·제조·콘텐츠 등 다른 산업 영역과 융합이 시작됐다. 커넥티드 자율주행, 스마트 공장, 모바일 게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초창기 이통통신 서비스의 대상은 사람이었다. 3G에서 사람이 아닌 기계 간 통신을 위한 규격이 만들어졌고, 5G에서 본격적으로 ‘초연결’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람이 아닌 사물(thing)도 서비스 대상이 되었다. 6G가 활용되는 영역은 사회문제 해결과 같은 공공의 영역으로 더욱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유럽에서 논의 중인 ‘6G 미래상’에서는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같이 인류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이동통신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또한 연결되는 대상도 사람과 사물을 뛰어넘어 동·식물 등 자연(nature)으로 확장될 것이다.

지금까지 기술과 서비스 측면에서 이동통신의 과거, 현재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probable) 미래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우리가 바라는 선호(preferable) 미래를 그려볼 시점이 왔다. 상상력을 통해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고, 그것에 대해 추상력을 통해 속성과 기능에 대한 개념설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 혁신과 서비스 혁신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모두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 수준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탈바꿈 혁신의 좋은 예로 스마트폰이 있다. 스마트폰은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개념으로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우리 생활에서 패러다임 수준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스마트폰 혁신의 원동력은 기술 혁신과 서비스 혁신이 동시에 이뤄져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의 이동통신을 더 이상 산업의 도구로만 생각하지 말고 개인의 행복, 공동체의 성숙, 공공의 혁신 등을 위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해준 역할을 바탕으로 미래의 스마트폰은 어떤 속성과 기능을 가져야 할까. 현재의 스마트폰처럼 거북목, 안구건조증, 불면증 등 잘못된 자세와 생활습관으로 인해 인체를 병들게 하지 않도록 새로운 형상을 가져야 한다. 생각이나 눈으로도 조작할 수 있는 등 누구라도 어떤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가져야 한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일일이 찾는 번거로움이 없도록 디지털 개인비서가 알아서 척척 도움을 주어야 한다. 우리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도록 가짜뉴스를 자동으로 걸러주어야 한다. 투표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온라인 투표가 가능하도록 100%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대유행병 상황에서도 사람들과 다양하게 소통하는 안전한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이런 개념이 터무니없거나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겠다. 문제만 정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동통신 기술이 ICT를 넘어 과학수준까지 지식의 경계를 넓히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도움을 받는 지능화 융합을 통한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는 미래상은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과 추상력을 통해 더욱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ICT는 인류 모두에게 미증유의 경험과 선물을 선사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도 탄생할 것이다.

◆김명준

서울대에서 계산통계학으로 학사를, KAIST에서 전산학 석사를 마쳤다. 아주대 종합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낭시 제1대학에서 전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86년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소장을 거쳐 2019년 4월 ETRI 원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