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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위험에 노출됐어요" 페북에 배달된 어느 손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난 5월 7일 경남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이 미국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와 한국 지사인 페이스북코리아에 보낸 편지의 내용. 독자제공

지난 5월 7일 경남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이 미국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와 한국 지사인 페이스북코리아에 보낸 편지의 내용. 독자제공

“안녕하세요. 페이스북 대표님. 어린이들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페이스북을 만들어주세요. 저의 편지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들어가세요♡”

삐뚤빼뚤한 글씨 속에는 페이스북 대표를 향한 한 초등학생의 간절한 바람이 담겼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와 함께 5학년 학생들이 쓴 손편지 중 일부다. 이들은 지난 5월 미국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와 한국 지사인 페이스북코리아에 각각 영어와 한국어로 이와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페이스북 본사에 편지 보낸 교사와 아이들

지난 5월 7일 경남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이 미국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와 한국 지사인 페이스북코리아에 보낸 편지의 모습. 독자제공

지난 5월 7일 경남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이 미국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와 한국 지사인 페이스북코리아에 보낸 편지의 모습. 독자제공

초등학생들이 페이스북에 편지를 보낸 이유는 뭘까? 사연을 듣고자 담임교사 A씨(35)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 하나가 날아왔다. “페이스북에 가입할 수 있는 나이는 몇 살부터일까요?” 정답이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리자 그는 “14살, 중학교 2학년부터예요”라고 말했다.

현행 법령상 국내에서 페이스북의 가입 가능 연령은 만 14세 이상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만 14세 미만의 아동으로부터 개인정보 수집ㆍ이용ㆍ제공 등의 동의를 받으려면 그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서다.

그러나 A씨에 따르면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초등학생이 페이스북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페이스북 계정을 생성할 때 생일을 허위로 기재한다면 실제 나이와 무관하게 가입이 가능한 허점이 존재해서다. A씨는 “지난해 우리 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제가 조사를 해보니 50여명이 이미 페이스북에 가입해있었다”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탈퇴를 시켰지만, 이는 전국의 초등학교 어디에서나 생길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가입 허술해 초등학생들 위험에 노출

A씨가 문제로 지적한 페이스북 계정의 모습. 독자제공

A씨가 문제로 지적한 페이스북 계정의 모습. 독자제공

A씨가 페이스북에 편지를 쓴 것은 “학생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기자에게 페이스북에 있는 성매매 알선 계정을 보여주며 “페이스북에 ‘카톡’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수많은 여성의 사진과 성매매 계정이 검색된다”며 “초등학생들이 이런 정보에 쉽게 노출돼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A씨는 이어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인증을 하는 사이트가 많다”며 “아이들이 나이를 속여 만든 페이스북 계정으로 본인의 나이로는 접근할 수 없는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가입할 때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지금처럼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서비스가 불가피하다면 어린이들이 페이스북에서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어린이들도 안전한 페이스북 만들어주세요”

지난 5월 7일 경남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이 미국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와 한국 지사인 페이스북코리아에 보낸 편지의 내용. 독자제공

지난 5월 7일 경남의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와 반 아이들이 미국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와 한국 지사인 페이스북코리아에 보낸 편지의 내용. 독자제공

A씨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지난 5월 7일 페이스북 측에 보냈다. 반 아이 22명도 직접 손 글씨로 편지를 썼다. 아이들이 쓴 편지에는 “어린이에게 평화롭고 안전한 페이스북을 만들어주세요” “어린이들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페이스북을 만들려면 대표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페이스북 기대할게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페이스북코리아에 보낸 편지는 지난 5월 10일에 도착했지만, 아직 답변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에 보낸 편지는 수취인 부재사유로 반송돼 돌아왔다. 편지를 쓴 Y양(12)은 “열심히 영어로 편지를 썼는데 답이 안 와서 속상했다”며 “늦게라도 답변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L양(12)은 “페이스북 대표님이 매우 바쁘신 것 같아 못 읽으신 것 같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페이스북, “모니터링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강화” 

이에 대해 페이스북코리아의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페이스북코리아 대표께서 실제 해당 편지를 받았는지는 현재로써 확인이 어렵다”며 “편지에 적힌 내용을 다시 전달해주면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중앙일보를 통해 편지 내용을 전달받은 페이스북은 A씨와 학생들이 보낸 편지에 대해 공식입장을 밝혀왔다. 페이스북코리아 측은 “페이스북을 악용한 음란물 유포와 같은 범죄 행위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청소년을 포함해 국내 이용자들이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페이스북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 따라 해당 내용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조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 교육 제공에도 최선의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여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페이스북 대표에게 보낸 편지

한국 페이스북 사장님께

저는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 라고 합니다.
페이스북 덕분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연락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장님께 정중하게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Facebook 운영의 의도는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가입 연령에 대한 보안 조치가 너무 느슨해서, 몇 가지 문제가 일어납니다.

Facebook에 회원 가입을 할 때, 나이를 속이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진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것처럼 가장합니다. 페이스북을 사용하여 시스템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입니다. 이 점이 저와 동료 교사들에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2020년에 우리 학교에서만 약 50명의 학생들이 나이를 거짓으로 입력하여 쉽게 페이스북에 가입했습니다. 저는 전국적으로 많은 초등학생이 페이스북에 가입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Facebook은 나라마다 가입할 수 있는 연령이 다른데, 한국에서는 만 14세 이상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가입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14세 미만 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계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에 의해 페이스북을 탈퇴한 학생 중 한 명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입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학생들이 나이를 거짓으로 입력하여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Facebook의 일부 콘텐츠가 초등학생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Facebook을 사용하여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응용 프로그램과 웹 사이트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Facebook의 가짜 정보를 사용하여 인터넷에서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앱이나 사이트에 가입하고 부적절한 콘텐츠를 보고, 폭력적인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이라는 회사를 믿기 때문에, 페이스북으로 본인 인증하여 로그인하도록 만들어진 많은 웹사이트와 앱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사용하며, 페이스북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페이스북 인증을 이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나이를 속여 가입할 수 없도록 해주시길 사장님께 부탁을 드립니다.

또한 페이스북에는 사기를 치기 위해 만든 허위 계정이나, 성매매를 알선하려고 계정을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점도 학생들에게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성매매를 알선하는 계정이 정말 많고, 심지어 초등학생에게도 이런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육자로서 저는 학생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서 페이스북의 책임자로서,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가입할 때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하여, 성매매 계정이 페이스북에서 없어지게 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어린이들이 페이스북에서 탈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어린이들이 페이스북을 더 오래 사용할수록 위험에 노출됩니다.

지금까지처럼 Facebook에 쉽게 가입하고 사용하도록 두고 싶으시다면, Facebook 내에 초등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어린이들이 웹상의 위험한 콘텐츠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자체 검증 과정이 강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밖에 누가 가짜 정보로 계정을 만들었는지 알아내어 프로필을 비활성화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가 제안하는 방법이 사람들이 진정으로 믿을 수 있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Facebook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페이스북을 통해 신뢰하는 관계에서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2월에 우리 학교의 약 40명의 학생이 교사들에 의해 페이스북에서 탈퇴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학생이 여전히 활성 계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고하려 했지만 2명을 신고 한 후 오류가 발생하여 신고할 수 없었습니다.
(2020년 12월에는 신고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았으나, 2021년 4월 23일에는 여러 명을 신고했으나 아직 탈퇴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신고 후 처리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인스타그램에서는 팔로우를 맺지 않은 미성년자에게 DM을 못 보내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이를 속여서 가입하는 경우에는 아이를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인 확인 및 나이 인증 절차를 강화하여 이 상황을 바로 잡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페이스북을 가입하는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증 절차를 강화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장님께 한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Facebook 사용자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방법을 개선하는 방법입니다. 페이스북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고하기 위해서는 Facebook 앱만 사용할 수 있고, 실제 담당자와 연결할 수 있는 전화번호나 전화선이 없습니다. 앱 내 보고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앱을 통해 Facebook에 문제를 신고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회신에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제가 아이들 페이스북 문제로 신고를 여러 번 해보았습니다만, 회신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저와 많은 사람들은 중요한 문제의 경우 전화로 담당자와 대화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문자로 대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페이스북을 대표하는 콜센터를 추가하여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직접 전화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희 반 아이들과 마음을 담아 쓴 편지를 보내니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사장님께서 아이들을 위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페이스북을 만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시간 내어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제 편지에 대한 회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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