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거짓말과 오판이 부른 코로나 대유행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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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정치 방역에 짓눌린 과학 방역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수도권에 엄중한 4단계 거리두기가 진행 중이다. 봉쇄(록 다운)를 제외하고는 가장 가혹한 통제다. 그럼에도 어제 하루 확진자가 1615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델타 변이에 대한 안이한 판단이 낳은 재앙이다. 유일한 대책은 백신이다. 하지만 “충분한 백신이 확보돼 있다”던 정부의 장담은 거짓말이 돼 버렸다. 하루 100만 명 이상 백신을 접종하는 인프라를 갖추고도 하루 10만 명도 못 맞히고 있다. 백신이 떨어진 것이다. 최악의 코로나 4차 대유행 속에 앞으로도 보름 이상 끔찍한 백신 가뭄이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짧고 굵게”를 약속했지만 질병관리청이 내놓은 시나리오는 훨씬 음울하다. “7월 말 1400명, 8월 중순엔 확진자가 2331명까지 늘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하지만 이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이틀 만에 깨져 버렸다. 정부는 델타 변이의 놀라운 확산에 자칫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당황해하는 눈치다. 위험한 여름 “얇고 긴”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있다.

정은경과 방대본이 맞았고
청와대·중대본은 틀렸다
과학 방역에 집중 안 하면
속수무책 록 다운 갈 수도

과학과 정치가 엇갈린 변곡점

끝이 안 보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대기줄. 델타 변이에 대한 오판과 백신 확보 실패가 4차 대유행을 초래했다. [뉴시스]

끝이 안 보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대기줄. 델타 변이에 대한 오판과 백신 확보 실패가 4차 대유행을 초래했다. [뉴시스]

지난달 24일은 중요한 시기였다. 총리가 본부장인 중대본(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본부장인 방대본(중앙방역대책본부)은 서로 엇갈린 입장을 내놓았다.

“국내의 코로나 통제 상태는 안정적이다. 델타 변이 비중도 10%가 안 돼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자영업·소상공인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중대본은 거리두기 완화를 계속 연기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은경 청장은 “델타 변이 확산이 우려된다. 1차 백신 접종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 수도권은 방역 조치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거리두기 완화는 시기상조이며 아직은 고삐를 죄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누가 옳았는지 판가름나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확진자가 갑자기 790명을 웃돌기 시작한 것이다. 방대본의 과학적인 예측이 현실로 나타났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을 경고한 김우주·천은미 교수 등 민간 전문가들의 경고도 들어맞았다. 이에 비해 중대본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왜 그랬을까. 그 직전 문 대통령의 K방역 자화자찬이 한몫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유럽 순방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6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세계적인 방역 모범국가로서 K방역은 국제적 표준이 됐다”고 자랑했다. 대통령은 “소비 쿠폰 등 전방위적인 내수보강책을 추진하라”고까지 지시했다. 이런 분위기에 누구도 반기를 들기 힘들었다. 정치 방역에 과학 방역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오히려 중대본은 방대본의 경고와 정반대로 갔다. 백신 접종자의 해외여행을 허용하는 트래블 버블을 예고하고 수도권에는 8인 모임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정치 방역의 결과는 참혹했다. 6월 30일 중대본은 오전에 거리두기 완화를 발표했다가 반나절 만에 이를 취소했다. 열흘 뒤 확진자가 1000명을 돌파하면서 수도권에 4단계 비상령을 내렸다.

“문 대통령의 저주”라는 안철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코로나 대유행을 ‘대통령의 저주’라고 비난했다. 험악한 표현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하기도 어렵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마다 문 대통령의 코로나19 종식 예언이나 K방역 자랑이 있었다”는 비판이 일정 부분 사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와 문대통령 자화자찬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와 문대통령 자화자찬

지난해 2월 1차 유행 때의 일이다. 의사협회 등은 중국인 입국을 막아 감염원을 차단하라고 건의했으나 대통령은 “정부를 믿고 과도한 불안은 자제해 달라”고 했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2월 13일)이라는 낙관론도 폈다. 하지만 닷새 뒤 신천지교회 사태가 터졌다. 청와대에 영화 ‘기생충’ 팀을 불러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를 한 날에는 코로나 첫 사망자가 나왔다.

2차 유행의 지난해 8월도 마찬가지다. 광복절을 사흘 연휴로 만들고 상품권 살포와 함께 여행 장려 캠페인을 벌였다. 문 대통령은 8월 11일 “우리는 봉쇄 없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방역 모범국이 됐다”고 자랑했다. 공교롭게 사흘 뒤부터 확진자가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때마침 안성맞춤의 희생양이 등장했다. 보수 진영의 광복절 광화문 집회였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들을 “살인자”로 몰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도 국회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역의 공든 탑에 흠이 생겼습니다. 8·15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됐습니다. 방역을 조롱하고 거부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3차 대유행 때도 닮은꼴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9일 “드디어 백신과 치료제로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낙관했다. 하지만 사흘 뒤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고 곧 들어온다던 백신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병상 부족으로 희생자가 늘기 시작했다. “백신은 안전성이 입증된 이후에 구입해도 늦지 않다”던 정부를 향해 민심의 역풍이 불었다. 청와대 홍보실은 궁색한 해명을 냈다. “지난가을부터 대통령이 빚을 내서라도 백신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는데 실무진들의 ‘잘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만 올라왔다”는 면피성 보도자료를 돌렸다.

2030 마녀사냥? 진짜 범인은 백신 가뭄

이번 4차 대유행은 더 이상 핑계 댈 게 없다. 정치 방역의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특히 현 정부 핵심 지지기반인 민주노총의 지난 3일 불법 집회가 결정적이었다. 서울 도심에서 8000명이 집회를 열었지만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1차 때의 신천지, 2차 유행 때 보수진영을 향한 살벌한 마녀사냥과 완전 딴판이었다. 뒤늦게 대통령이 “방역조치 위반에 무관용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것도 민주노총이라는 주어를 빼버린 상태였다.

최근 정부가 은근슬쩍 화살을 돌리는 것은 2030세대다. 젊은 확진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전파력이 2.7배 높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우점종이 되는 상황에서 진짜 문제는 백신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변이든 뭐든 백신 접종을 빠르게 마치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K방역의 핵심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낡은 레코드판을 돌리고 있다.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한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모더나 CEO와 통화해 2분기부터 2000만 명분을 공급받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도착한 모더나는 채 2%가 안 된다. 정부는 “올해 총 1억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고 밝혔으나 1차 접종률은 30%, 2차 접종률 11%에서 게걸음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내건 “4000만 명 백신 확보”라는 현수막이 여전히 우스갯거리로 소환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백신이 정치적 선전물로 변질된 것이다.

백신 부족은 이달 말을 넘겨야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7월 말~8월 초 1000만 회분이 도착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자영업자들과 서민의 아우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보름 동안 가혹한 4단계 거리두기에다 사상 최악의 백신 가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령자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진행돼 중증 비율과 치명률이 1~3차 유행보다 줄어든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짧고 굵게? 오히려 ‘봉쇄’ 우려

1~4차 대유행의 공통분모는 청와대가 낙관론을 주도한 것이다. 중대본이 그 눈치를 살피면서 거리두기 완화 등을 입안하면 청와대가 최종 승인하고, 어김없이 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나면 질병청이 뒷수습에 나서 간신히 봉합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자영업자들이 희생되고 의료진들은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했다.

최근 정기석 한림대 의대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는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역학 조사 같은 실무는 질병청에서 하고 정책 결정은 다른 곳에서 내린다. 중앙정부에서 질병청이 컨트롤 타워가 아닌 것 같다.” 올해 초 “백신 접종과 관련해 질병청장이 전권을 갖고 전 부처를 지휘하라”는 문 대통령의 지시와 딴판인 것이다.

보수 야당은 이번 4차 대유행을 놓고 기모란 청와대 방역 기획관을 정밀 타격하고 있다. 정은경 청장 등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청와대 주도의 정치 방역이 반복되는 배경에 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결과 이번에도 민간 감염병 전문가들과 청와대의 진단은 엇갈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2주간 짧고 굵게”를 약속했지만 김우주·정재훈·천은미 교수 등은 악몽의 여름을 점치고 있다. 전파력이 강한 델타 변이에다 휴가철 전국적인 풍선 효과 때문이다. 이들은 “신규 확진자가 2000명을 넘으면 수도권은 록 다운(봉쇄)에 들어가고 전국적으로도 4단계 거리두기에 준하는 극약 조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과학적이어야 할 방역이 정치적으로 오염되면서 혹독한 후과를 초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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