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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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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무선호출기(일명 ‘삐삐’·사진)를 사용했던 시절, 젊은이들 사이에선 영화 속 스파이들의 암호처럼 숫자가 언어를 대신했다. ‘1004(나의 천사)’ ‘0404·0124·0024(영원히 사랑해)’ ‘0179(영원한 친구)’ ‘8255(빨리 오시오)’ ‘8282(빨리빨리)’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나 지금이나 문장을 줄여서 빠르고 재밌게 의미를 전달하려는 젊은이들의 생각은 비슷한가 보다. 오늘의 신조어 700은 ‘귀여워’의 초성 ㄱㅇㅇ의 모양이 숫자 700과 닮았다고 해서 요즘 MZ세대가 즐겨 쓰는 용어다.

1990년대 사용했던 무선호출기. [중앙포토]

1990년대 사용했던 무선호출기. [중앙포토]

각기 다른 언어와 달리 전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호인 숫자는 누구나 쉽게 인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여기에 특정한 의미까지 숨겨놓을 수 있다니 대단히 매력적이다. 때문에 광고업계에선 ‘숫자 마케팅(numeric marketing·누메릭 마케팅)’ 기법이 활발하다. 브랜드 및 상품 이름에 특정 숫자를 넣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기억에 잘 남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한 달 내내 매일 새로운 맛을 제공하겠다는 ‘베스킨라빈스31’, 100mg 음료 한 병에 비타민 500mg이 함유됐다는 ‘비타500’, 3분 만에 뚝딱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는 ‘오뚜기3분카레’, 삼천리 방방곡곡을 달리겠다는 ‘삼천리자전거’ 등이 있다.

물론 일상의 언어와 광고는 목적도 대상도 확연히 다르다. ‘너는 정말 700’이라고 쓴 광고판은 제품을 설명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지만, 누군가 전화기에 대고 똑같이 속삭인다면 그 감성이 전달될까. 신조어를 사용할 때도 재미뿐 아니라 대상과 의미 전달 목적에 신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