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사이드] 8월에 들어온 소련군, 9월에 온 미군…점령군 논란 팩트는 바로 이것

중앙일보

입력 2021.07.14 11:00

업데이트 2021.07.14 13:10

해방 직후 북한 지역에 주둔한 소련군 [중앙포토]

해방 직후 북한 지역에 주둔한 소련군 [중앙포토]

지난 5월 경기도에 있는 양주백석고 학생에게 보낸 김원웅 광복회장의 영상강연 내용이 보도됐다. 광복 이후 북한에 진입한 ‘소련군은 해방군’이고, 남한에 들어온 ‘미군은 점령군’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광복군 공적서 은폐 의혹을 받는 가운데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장한 말이기 때문에 더욱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해방군 논란은 광복 직후부터 38선 너머 북녘땅에서 지금까지 수없이 들려 온 레토릭이자 궤변과 같다.

궤변이란 얼른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참을 거짓으로, 거짓을 참으로 잘못 생각하게 하여 상대방이 쉽게 반론할 수 없도록 사상적 혼란과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도 종종 사용된다. 쉬운 말로는 말장난이다.

이참에 대관세찰(大觀細察) 해보자. 먼저 대관(大觀)이다. 1945년 8월 초 일본군의 패전이 목전에 임박해지자 ‘기회는 이때다’라며 잽싸게 북쪽으로 남진한 ‘소련군은 공산주의 점령군’, 이러한 공산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한 달 뒤 남쪽에 상륙한 ‘미군은 민주주의 해방군’이 팩트다.

다음은 세찰(細察)이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 상공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왔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틀 뒤 일본에 선전포고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9일 소련군은 이미 북한의 함경북도 경흥지역을 점령했고 계속 남진했다.

소련군의 신속한 남진에 놀란 미국은 공산주의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지 못하도록 급박하게 중간선인 38 도선을 설정하여 소련에 통보한다. 그리고 한 달이나 뒤늦었지만 9월 8일에 인천에 상륙했다. 두 가지 모두 팩트다.

소련군은 이미 점령을 준비했었고, 미군은 소련군처럼 준비가 안 된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힘없고 분열되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이 긴박한 시기에도 남쪽에서는 지금처럼 여전히 좌우익으로 나뉘어 서로 잘난체하며 편 가르기에 열중 했었다. 이것도 팩트다.

김원웅 광복회장 뉴스1

김원웅 광복회장 뉴스1

이후 미군은 주요 임무로 일본군을 무장을 해제하고 치안 질서 유지 하에 공산세력을 차단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군정을 실시했다. 팩트다. 그리고 미군은 한국 정부 수립과 한국군 창설을 지원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미련 없이 전면 철수했다. 이것도 팩트다.

반면, 음흉했던 스탈린의 소련군은 공산당의 공작 정치 용어인 해방군으로 자신들을 선전하며 북측 인민들을 선동하고 독자적인 공산주의 정부를 세워 오늘날의 분단을 영구화했다. 팩트다. 그때 북쪽에 수립된 공산주의 단독정부가 지금의 북한이다. 이것도 팩트다. 그리고 북한은 소련의 승인 아래 6·25남침을 감행했다. 이것 또한 팩트다.

광복 직후 미군이 일본군 무장해제와 치안 임무 외에 공산주의 세력을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한 사실과 6·25남침 시 다시 전쟁에 참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할 수 있게 한 사실도 역사적으로 완전하게 확인됐다. 이것 또한 팩트 아닌가?

친일세력이 점령군인 미군과 합작했다는 또 다른 궤변은 그 당시에도 좌익이 우익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두 세력이 분열되는 구실을 했었다는 나쁜 인식의 연장 선상에 우리가 아직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로 좌우로 진영싸움에 갇혀 있었지만, 미국(미군)은 세계를 보고 있었다. 미군정 친일합작설 논란은 그 당시에 중요한 과제가 아니었다. 미군정은 당시 한국지역 내 여러 정치세력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 노력했고, 남한 주민들의 결사·언론·출판 등의 시민적 자유를 인정하고 정당 결성 등의 정치적 자유도 허용했다.

당시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이 포고문을 통해 “귀국을 민주주의 제도하에 있게 하고 국민의 질서유지를 도모함도 이번 상륙의 목적”이라 밝힌 것처럼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는 데 미군정의 임무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50년 9월 15일 미군과 한국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 2주 만에 서울 수복에 성공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미 동맹은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하는 확실한 억제책 역할을 했다. [중앙포토]

1950년 9월 15일 미군과 한국군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주도한 인천상륙작전 2주 만에 서울 수복에 성공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미 동맹은 북한의 전쟁 도발을 억제하는 확실한 억제책 역할을 했다. [중앙포토]

맥아더 포고령에 나오는 영어단어 “occupy”는 비행기 내에서도 승객이 화장실을 잠시 이용할 때 화장실 문 밖에 ”사용 중(occupied)”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듯이 “occupy”는 당시의 상황과 목적에 부합하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다.

맥아더 포고령에 “occupy’라는 용어를 미군이 직접 사용해서 부정적 의미의 ‘점령군’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억지 주장이다. 그야말로 나무만 보며 숲은 볼 줄 모르고 오직 사리사욕만을 위해 보고 싶은 단면만 보려는 전형적인 궤변이자 희망적 사고에 불과할 뿐이다.

친일을 말하기 전에 왜 영토를 빼앗기고 주권도 빼앗기고 언어와 문화도 말살당했는지, 그리고 왜 일본이 항복했는데도 소련군이나 미군이 한반도에 진입했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식민지 시대 친일이든 반일이든 선대들의 고초를 헤아리지 못하고 조상 탓만 해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십보백보로 별반 차이 없는 역사 편 가르기로 후대에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전후 세대가 된다면 힘없었던 조상들의 말 못 할 아픔에도 죄짓는 것이다.

지금 미점령군이 친일세력과 합작했다고 주장하려면 미군이 왜 반 공산주의를 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다. 그래서 자꾸 친일 주장으로 이득을 보려는 자들은 국민을 무시하는 참 나쁜 궤변론자들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더는 식민지와 전쟁 경험에 멀어져 있는 MZ 세대들의 가치관과 역사관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희망을 주는 당당한 어른세대가 되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선진국 지위로 변경했다. 이를 자기 세대가 한 것처럼 자랑하지 말고 부모 세대 덕분으로 인정하자.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행복지수가 아직도 35위라는 불명예는 지도자들이 해결해야 할 책임임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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