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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성범의 미래를 묻다

미·중 과학기술 전쟁, 2035년에 결판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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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G2의 미래

홍성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명예연구위원

홍성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명예연구위원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 전역을 강타했다. 당시 베이징에 거주했던 필자도 팬데믹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체험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사스 위기를 계기로 중국은 이른바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로 불리는 인터넷 거대 기업들을 탄생시켰고 ‘플랫폼경제’라는 새로운 거대 경제영역을 발전시켰음을.

트럼프 중국 때리기 성과 못 거둬 #중국의 대미 수출은 오히려 증가 #“10년간 칼 한 자루 가는 심정으로” #리커창, 첨단 핵심기술 개발 공언

처음 텐센트를 방문했던 2017년 5월, 로비 한 면을 가득 채운 세계 지도와 불꽃처럼 점멸하던 8억이란 위챗 하루 활성 사용자 숫자는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이 수치는 매년 1억씩 증가해 2019년 10억을 돌파했다. 위챗을 통한 하루 메신저 수는 450억 건에 달한다. 21세기의 자원은 데이터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국내총생산(GDP) 못지않게 국민총데이터생산(GDP:Gross Data Production)이 중요하다. AI는 규제 없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누가 더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2011년부터 텐센트는 트래픽 자원 등을 개방해 개발자들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하는 ‘개방형 플랫폼’을 구축했다. 그 결과 O2O(온·오프라인 결합) 생활서비스·금융·의료·교통 등 11개 분야의 개방형 텐센트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었다.

2007년 7월 중국 우주사업을 총괄하는 중국우주과기그룹 홍보실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3대 우주발사기지 중의 하나인 쓰촨성(四川省) 시창 위성발사센터 방문 여부였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전세기에는 각국 외교관 등 외국인들로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초청 목적은 나이지리아 통신위성 발사 대행에 대한 홍보였는데, 발사로켓·위성·관리시스템 제작 및 현지 인력교육 등 중국 최초의 우주 턴키 수출을 보여 주고 많은 해외고객 유치가 더 중요한 이유였다.

도착한 시창 위성발사센터는 깊은 산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정에 발사하기 때문에 낮 시간에 사전 관람시간이 주어졌다. 안내를 맡았던 리홍 부원장은 중국의 발사 실패율은 0%이고 향후 100개의 위성발사 계약이 되어 있어 먹고 사는 데는 문제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현재 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14년, 중국은 달탐사, 고해상관측, 유인우주선, 베이더우 위성항법시스템, 차세대 발사체의 5개 우주개발 플랫폼을 중심으로 숨 가쁘게 우주 역사를 쓰고 있다. 달탐사선 창어, 우주정거장 톈궁, 화성탐사선 톈원 등이 그 성과이다. 2050년 스페이스 이코노미(우주경제)의 등장에 대비한 준비를 가속화하고 있는 중이다.

나바로 패러다임과 설리번 패러다임

지난달 3일 중국 쓰촨성 시창위성발사 센터에서 기상위성 FY-4B가 창정-3B로켓에 실려 발사되고 있다. 장정로켓 발사로 372번째다. [신화=연합뉴스]

지난달 3일 중국 쓰촨성 시창위성발사 센터에서 기상위성 FY-4B가 창정-3B로켓에 실려 발사되고 있다. 장정로켓 발사로 372번째다. [신화=연합뉴스]

피터 나바로는 중국 때리기의 이론과 실무를 제공한 미국 트럼프 정부 초대 국가무역위원장과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을 역임한 인사다.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줄기차게 중국 위협론을 주장해왔다. “중국은 악이며, 악의 근원은 공산당”이 핵심 논리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중국 공격은 결과적으로 큰 전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는 중국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방역 물자와 저렴한 비대면 관련 물품 등으로 중국의 대미 수출은 더 증가했다. 중국에 대한 기술규제는 오히려 중국의 기술자립 의지를 힘껏 북돋워 주는 역할을 하였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 때리기는 과연 달라질 것인가. 바이든의 책사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렇게 답했다. “중국은 전 세계 수많은 국가와 깊이 얽혀있고 미국 경제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전 세계 국가의 3분의 2가 중국을 최대 무역 파트너로 삼고 있다. 따라서 봉쇄전략을 쓸 수는 없다.” 그래서 큰 틀은 같지만 훨씬 정교해지고 임팩트가 강한 대(對) 중국 전술이 작동될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설리번 패러다임의 핵심은 동맹과 기술이다. 중국은 약하지만 미국의 강점인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스파이더 전술이 추진된다. 통신 등 첨단기술 활용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클린 네트워크, 미국 주도의 경제번영 네트워크(EPN), 4개국 안보네트워크인 쿼드 등으로 구체화할 것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수출전쟁은 이미 실익이 없음을 절감했다. 미국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명공학·인공지능·우주 등 미래 첨단기술에서 우위를 지속하고 철저한 봉쇄를 통해 중국을 좌초시키는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의 반격, ‘차보즈’와 ‘십년마일검’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 공격이 기술전쟁으로 확대되면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들은 화웨이를 비롯, AI·얼굴 인식·사이버보안·로봇·CCTV·나노제조·음성인식·슈퍼컴·위성· 5G 등 기술력과 시장경쟁력을 보유한 4차 산업혁명의 중국 대표주자들이었다. 중국에 비상이 걸렸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계획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2018년 5월 18일 원사대회에서 시진핑은 중요한 정책 키워드를 제시한다. “차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기술 개발을 가속화하자. 우리가 직면한 많은 차보즈 기술문제는 기초원천의 근본문제에 있다”. ‘차보즈’는 중국어로 ‘목을 누르다’라는 뜻이다. 트럼프 등장 이후 미국이 중국의 목을 누르는 기술에 우선순위를 두고 기본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였다.

중국 내에서는 차보즈 기술 리스트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중국과학원의 한 연구자가 제시한 35가지 기술이 인터넷상에 떠돌았지만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양회에서 발표한 제14차 5개년 계획에서 차보즈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양자정보 등 7대 과학기술선도 분야, 항공기엔진 등 8대 제조업 핵심 경쟁력 분야를 명확히 했다. 특히 단순 기술개발이 아닌 실물경제와 연계된 5G·우주 등 인프라, 에너지 시스템, 신유통, 환경생태 관련 분야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기술과 산업을 기반으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양회 마지막 날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는 “10년간 칼 한 자루 간다는 심정으로(十年磨一劍) 중국의 목을 조르고 있는 첨단 핵심기술을 개발하겠다”라고 국가의 의지를 공언했다. 이미 1960년대 소련과의 갈등으로 기술자립을 통해 단기간에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폭탄·수소폭탄·인공위성)의 성과를 경험했던 중국은 국가 자원의 총동원 체제를 통해 10년간 검을 갈 것이다.

10년간 칼을 갈겠다는 중국,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미국의 공세에 중국이 숨을 죽이고 있어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일지 모르나, 2030년 바이오 이코노미, 2050년 스페이스 이코노미의 등장에 대한 우리의 대비는 어떤가.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는 부처 간 영역 다툼의 희생양이 되고 있지 않은가. 5년 단임 정부, 준비 1년 레임덕 1년을 빼면 3년짜리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국회는 심각히 생각해 보았는가. 그리고 중국이 10년 동안 어떤 전략으로 칼을 갈지 심층적인 팩트 분석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급변하는 중국의 신시장 공략을 위한 중장기 전략도 시급하다. 중국의 차보즈 기술 분야는 우리에게도 목 죄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2035년, 미국 경제 추월하고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

지난달 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공연. [AP=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공연. [AP=연합뉴스]

중국 정부는 ‘제14차 5개년(2021~ 2025년) 규획 및 2035년 장기목표’를 통해 2개의 100년(중국 공산당 설립 100주년인 2021년과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50년) 중간 단계인 2035년을 새롭게 설정했다. 2050년은 모든 면에서 미국을 추월, 명실상부한 G1 등극을 목표로 삼았는데 뜻밖에도 미국의 강한 압박과 견제에 직면해 그동안의 경로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2021년을 출발점으로 2050년의 중간인 2035년을 새로운 중간목표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즉 2020년에 소강사회를 건설하고, 2035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를 달성하고, 2050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한다는 목표이다. 2035년은 경제력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게 목표이다.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신속한 회복과 성장은 역설적으로 미국 추월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예측까지 가능하다. 2035년까지는 중국은 미국에 비해 전력이 약한 팀이다. 시간을 끌고 수비 위주의 경기를 운영하면서 철저히 차보즈 기술을 자립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성공할 것인가. 미·중 기술 경쟁의 중요한 전환점, 2035년이 주목되는 이유이다.

◆홍성범

단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과학기술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 과학기술 전문가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베이징·2004~2010), 한국-상해글로벌혁신센터장(상하이·2015~2016)을 역임하는 등 30여 년 동안 중국과학기술을 연구하면서 57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2019년부터 STEPI 명예연구원으로 있으며, 최근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 기업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