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랜덤박스 덕분"
허난성 정저우시에서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는 91년생 청년 류(刘)씨.
고된 배달업을 그만두고 그는 약 2년 전 처음으로 요식업 창업을 했다. 하지만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고 적자를 보기 일쑤였다. 유치원생 자녀까지 둔 부모 입장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어느 날 자녀와 놀아주던 중 우연히 '랜덤박스'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장난감과 인형으로 구성된 랜덤 '추첨 상자' 이벤트를 통한 모객 전략을 짠 것이다. 어린이공원 근처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과 결부돼 이벤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년 후 그는 연 184만위안(약 3억1천만원)의 순수입을 올리게 됐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랜덤박스 덕분"이라고 밝혔다.
피규어 인형에서 시작, 이제는 요식업도 '랜덤박스' 열풍
비단 류씨만 이러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부는 랜덤박스 유행은 산업을 건너 요식업계에도 넘어왔다. 2019년경 루이싱 커피(瑞幸, luckin), 샤부샤부 훠궈(呷哺呷哺) 등 대기업들 역시 랜덤박스 열풍에 참여해 관련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특정 텀블러 제품을 구매하면 랜덤박스를 준다거나, 유명 캐릭터 IP를 빌려 피규어 인형을 제작하는 식이었다.
2020년 하반기를 넘어가면서는 조금 더 과감한 시도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피규어를 통한 모객 효과를 노리는 것에서 넘어 음식 메뉴와 랜덤박스 놀이 방법 자체를 섞기 시작한 것이다. 메뉴판에 '랜덤 박스' 메뉴를 만들고, 손님이 이를 주문하면 말 그대로 '랜덤'으로 식자재나 음식이 나오는 방식을 시도하는 곳들이 늘고 있다.
청두 훠궈 프랜차이즈 다룽이(大龙燚)는 최근 선전의 매장에서 최초로 9.9위안(약 1700원) '랜덤박스' 메뉴를 선보였다. 랜덤으로 들어간 항목에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식재료 이용권이나 할인권, 식사권 등 다양한 옵션들이 들어 있다. 운이 좋을 경우 '50% 할인권'이나, '2인 세트 식사권' 등 파격적 혜택들도 숨어 있다.
선전의 또 다른 유명 광둥음식 프랜차이즈 페이타오차찬팅(肥韬茶餐厅) 역시 지난 2월 '도박의 신(赌神)'이라는 메뉴를 새롭게 만들었다. 해당 메뉴를 주문하면 매장 내 요리 중 하나가 랜덤으로 식탁으로 오게 된다. 뽑을 수 있는 메뉴에는 랍스터, 스테이크 등 고가의 메뉴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색적인 이벤트와 고가의 음식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이 메뉴를 주문하는 것은 이 가게에 오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관례가 됐다.
음식에 '재미' 요소까지 더해
랜덤박스는 다양하게 응용돼 요식업 다른 분야에도 적용되고 있기도 하다. 기존 메뉴들에 '랜덤'이라는 요소 하나만 더하면 되기 때문에 적용이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그 효과는 나쁘지 않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고민하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음식 전문점 등 다양한 방면에서 랜덤박스라는 새로운 유행이 시도되고 있는 모습이다.
요식업계에 새롭게 불고 있는 랜덤박스 열풍에 대해 중국식품산업분석가주단펑(朱丹蓬)은 "기존 국내 랜덤박스 유행이 만들어낸 '호기심 경제'가 요식업 부분에도 적용되며 이 산업에서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지려는 초기 양상을 보인다"며, "랜덤박스의 유행 자체가 '호기심'이라는 비이성적 요소에 바탕을 둔 만큼 자칫 잘못하다간 자극적인 면만 추구하는 쪽으로 변질할 위험성 역시 다분하다"며 경계의 필요성 역시 언급하기도 했다.
차이나랩 허재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