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금리 등 불확실성 큰 장세, 베타계수 1 미만 종목 뜬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4호 15면

주목받는 ‘재미없는 주식’ 

개인 투자자 주모(47)씨는 얼마 전 자신의 HTS(온라인 주식 매매 시스템)에서 평가손익을 조회했다가 어리둥절했다. 주가 흐름이 좋고 큰 호재가 있어 단기 차익을 기대하고 투자한 종목은 마이너스(-) 수익률인 반면, 장기 안정성만 보고 수익률은 별 기대 없이 들어갔던 LG생활건강은 한 달 사이 주가가 10% 이상 껑충 뛰어서다. LG생활건강 주가는 2일 장중 178만4000원의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9일 현재 170만원대로 한 달여 전 150만원대에서 급등했다.

Fed 조기 테이퍼링 등 변수 많아 #경기 변동 덜받는 종목 매력 부각 #LG생건·NHN 등 이례적 상승세 #재무구조·실적 확인 뒤 투자해야

주씨는 “이렇게 단기간 크게 뛰는 종목이 아닌데 의아했다”며 “기분은 좋지만 주식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8월부터 올 5월까지 긴 시간을 150만원대에서 횡보했다. NHN에 투자한 최모(32)씨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 초까지 6만~7만원 선에서 지루하게 횡보했던 NHN 주가는 지난달 중순부터 급반등하더니 이달 들어 8만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LG생활건강은 증권가나 투자자 사이에서 이른바 ‘재미없는 주식’으로 통한다. 최근의 카카오나 수년 전의 셀트리온처럼 주가가 드라마틱하게 오르는 ‘대박’은 없지만 그렇다고 급등했다가 폭락하는 ‘쪽박’도 없는, 안정적이지만 변동성이 미미한 무거운 종목이어서다. 이에 최근 매수세가 이어지기 전까진 황제주(주가가 100만원이 넘는 주식)임을 고려해도 기업 규모나 명성에 비해 거래량이 많지 않았다. NHN도 네이버의 인적분할로 독립 출범한 2013년에만 한동안 10만원대였다가 이후 7년여 동안 주가 흐름이 정체됐던 재미없는 주식 중 하나였다. 이들 주가는 왜 갑자기 확 오른 걸까.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일단 두 기업 다 실적 개선세가 뚜렷하다. 배송이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LG생활건강의 올 2분기 화장품 부문 매출은 1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25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34%, 4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핵심 판매처인 중국에서 백신 접종 효과 등으로 소비 회복세가 두드러진 데다, 한방 화장품 브랜드 ‘후’ 등의 인기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NHN도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670억원, 30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씩 개선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어려울 만큼 투자자들에게는 이례적인 주가 상승세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및 금리 인상 신호탄을 쏜 반사이익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연준 내에서 인플레이션 우려를 고려한 테이퍼링 필요성이 코로나19 확산 후 처음 언급되면서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됐다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선제 금리 인상은 없다”며 진화에 나선 시점과, 이들 주가가 전격 반등한 시점이 대략적으로 맞아떨어져서다. 이 무렵 연준발 불확실성 탓에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 더 투자해야 하는지 시장은 혼란스러운 상태다.

이런 시기일수록 고평가 논란이 있는 성장주보다는 가치주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문제는 테이퍼링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여지 정도만 나왔기에 마냥 가치주 일변도의 투자로 돌아서기도 애매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시국이 연장된다면 지난해 3월 저점 이후 증시에서 날아오른 성장주의 매력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연준발 신호로 가치주냐 성장주냐를 구분하기보다 재무구조와 실적이 안정적인 기업을 찾아 투자하는 게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말했다. 재무구조가 양호하고 지난 수년간 전체 매출·영업이익 등 실적이 계속 우상향한 LG생활건강과 NHN은 여기에 잘 부합한다.

이렇듯 ‘가치주 겸 성장주’로서 이점이 한층 부각되면서 최근 매수세가 몰렸다는 해석이다. 비슷한 이치로 주가 변동성은 작지만 알짜인 재미없는 주식에 지금 투자한다면, 불확실성 리스크를 덜면서도 장기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를 시도하는 데 관심이 가는 투자자라면 베타계수라는 지표를 눈여겨볼 만하다. 베타계수는 증시 전체의 가격 변동성 대비 특정 주가의 변동성을 나타내준다. 베타계수가 2.21인 종목이면 코스피 등 속한 지수가 1% 오를 때 2.21% 오르고, 1% 내릴 때 2.21% 내림을 뜻한다. 따라서 베타계수가 1보다 낮으면 안정성이 강한 경우로 인식된다.

이달 현재 기준 LG생활건강의 52주 베타는 0.53, NHN은 0.56으로 주간 변동률이 극히 낮았다. 통상 베타계수가 낮게 나오는 업종으로는 경기 변동의 영향을 덜 받는 식음료와 주류, 전기·가스·철도 등이 있다. 실제로 해당 업종에 속한 롯데칠성(0.46)·빙그레(0.14)·하이트진로(0.73)·한국전력(0.64)·SK가스(0.71)·대아티아이(0.34) 등의 52주 베타가 나란히 낮았다. 그만큼 재미없는 주식이지만, 거꾸로 보면 리스크 헤지(방어)에 상대적으로 강한 주식인 셈이다. 다만, 단지 베타계수가 낮다는 점 하나로 요즘 같은 시기에 무조건 좋은 종목인 것은 아니다. 옥석 가리기가 중요한 이유다.

예를 들어 한국전력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타격 등으로 2019년까지 적자가 심해졌다가 지난해에야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나 내년 전망은 불투명하다. 대아티아이도 매년 조금씩 꾸준히 성장 중인 중소기업이지만,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아서 가치주 겸 성장주의 관점에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외에 투자 매력 자체가 떨어져서 매수세도 매도세도 약하다 보니 베타계수가 낮을 뿐인 경우인 건 아닌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재윤 SK증권 연구원은 “재무구조가 뒷받침되면서도 원자재 가격 급등세 등 최근 흐름에 따른 타격을 덜 받을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