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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 중독' 이런 병만 중대재해 인정…과로·근골격 질환 제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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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정부 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정부 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직업성 질환 범위와 적용 대상이 나왔다. 화학물질을 갑자기 다량 흡입해 발생하는 중독 사망과 같은 급성 질환만 중대재해로 본다. 근골격계 질환이나 소음성 난청과 같은 지병형 질환은 제외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발표 #일시적으로 다량의 화학물질 노출에 따른 #급성 중독 사망 등으로 중대재해 한정 #근골격계, 소음성 난청 등 지병형은 제외 #노동계 "솜방망이 시행령" 비판 #경영계 "경영진 의무 불분명" 불만

경영 책임자는 안전보건을 위한 적정 인력을 확보해야 하고, 안전보건 예산도 별도로 편성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9일 공개했다. 12일부터 다음 달 23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확보 의무를 위반해 1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면 중대재해로 본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돼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중대재해의 범위와 경영 책임자의 의무 등을 구체화한 법 시행 방안이다. ▶직업성 질병의 범위 ▶재해예방 인력·예산 구축과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경영 책임자의 의무 ▶안전보건교육 절차와 내용, 중대재해발생 사실 공표방법과 기준이 쟁점이었다. 특히 직업성 질병의 범위와 경영 책임자의 의무를 두고 노사 간에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다.

이번에 공개된 시행령에 따르면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급성 ▶인과관계 명확성 ▶예방 가능성이 높은 질병으로 한정했다.

노동계는 그동안 근골격계 질환이나 소음성 난청,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같은 뇌심혈관계 질환, 과로 등을 중대재해의 범주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사업장의 업무 강도와 설비 등 근로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 질병은 중대재해에 포함하지 않았다. '일시적' '다량의 화학물질에 노출' '급성 중독'과 같은 조건에 부합하는 질병에 대해서만 중대재해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납이나 벤젠,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황화수소, 불화수소, 불산, 시안화수소, 카드뮴, 톨루엔 같은 화학물을 갑자기 다량 흡입하거나 노출돼 생긴 급성 중독만 중대재해로 봤다. 오염된 냉각수로 인한 레지오넬라증, 산소농도가 부족한 장소에서 발생한 산소결핍증, 열사병, 렙토스피라증도 이 조건에 충족되는 질환으로 분류했다. 이에 해당하는 질병은 모두 24개다.

중대시민재해가 적용되는 공중이용시설에는 기존 실내공기질 관리법이나 시설물 관리 특별법,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에 해당하는 시설만 포함했다. 중대시민재해는 근로자뿐 아니라 시민이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다. 바닥 면적이 1000㎡(약 302평) 이상인 다중이용시설은 대부분 적용 대상이다. 다만 소상공인 사업장이나 소규모 비영리시설, 교육시설, 공동주택은 제외된다. 실내주차장, 업무시설, 오피스텔, 주상복합, 전통시장도 중대시민재해 대상에서 제외했다. 건축물이 연면적 5000㎡ 이상인 전통시장은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에 포함했다.

공중이용시설 범위에는 주유소, 가스충전소, 놀이공원과 같은 종합유원시설업, 준공 뒤 10년이 넘은 도로교량이나 철도교량과 터널을 포함했다. 철거현장에서 발생한 광주 붕괴사고 등에는 적용할 수 없다.

안전보건 전담 인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했다. 다만 중대재해법에 처음 명시된 중대시민재해와 관련, 재해 발생 우려가 있는 곳은 적정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구체적인 배치 인원은 명시하지 않았다.

안전보건 예산 편성도 규모별 기준을 정하지 않고 '적정 예산 편성 의무'로 규정했다. 인원과 예산 규모를 특정할 경우 기업 경영에 개입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고려한 조치다. 소상공인에게는 교육, 관련 서류 보관과 같은 안전의무가 면제된다.

근로자를 대상으로 안전보건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50인 미만은 적발 횟수에 따라 500만~1500만원, 50인 이상은 1000만~5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노사는 모두 불만이다.

한국노총은 "경영계가 건의한 내용만 반영된 솜방망이 시행령"이라며 "시행령 내용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실효적으로 작동시킬 수 없고, 오히려 법인과 경영 책임자에게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인식만 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논평을 통해 "경영 책임자의 의무 등 많은 부분이 여전히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어느 수준까지 의무를 준수해야 처벌을 면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증도 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경미한 질병까지 중대산업재해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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