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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밝혀라” 최재형에게 남긴 노병의 마지막 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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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8일 오전 1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최 대령은 정치 도전을 앞둔 아들 최 전 원장에게 "대한민국을 밝혀라"는 글귀를 남겼다. 중앙포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 8일 오전 1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최 대령은 정치 도전을 앞둔 아들 최 전 원장에게 "대한민국을 밝혀라"는 글귀를 남겼다. 중앙포토

“대한민국을 밝혀라.”
한국전쟁에서 숱한 승전고를 울린 노병이 정치 문턱에 선 아들에게 남긴 유언은 짧지만 강렬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8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 ‘대한민국을 밝혀라’는 글씨를 남겼고, ‘소신껏 해라’는 마지막 육성도 남기셨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별세

최영섭 대령이 8일 오전 1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최 전 원장과 가까운 인사들은 “최 전 원장의 국가관과 성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부친”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 전 원장은 평소 주변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을 때면 “아버지”라고 답하곤 했다. 최 전 원장은 지난달 28일 감사원장직을 사퇴한 뒤 정치판에 발을 들이는 아들을 걱정하는 부친에게 “가는 길을 믿어달라”고 안심시켰다. 정치 선언을 앞두고 가족과 지방에서 머물던 최 전 원장은 6일 부친이 위중하다는 말을 듣고 급히 귀경했고, 다음날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주변에선 “최 전 원장이 정치 결심을 굳힌 결정적 계기가 최 대령”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죽더라도 깨끗이 죽자” 대한해협 해전 영웅

2007년 6월 22일 대한해협 전승 57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부산항 앞바다에서 열렸다. 최영섭(왼쪽) 예비역 해군 대령과 현역 해군 장병들이 충남함에서 해상헌화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2007년 6월 22일 대한해협 전승 57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부산항 앞바다에서 열렸다. 최영섭(왼쪽) 예비역 해군 대령과 현역 해군 장병들이 충남함에서 해상헌화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최 대령은 한국전쟁의 영웅이었다. 해군사관학교 3기인 고인은 1950년 2월 소위로 임관해 백두산함 갑판사관으로 부임했는데, 몇달 뒤 한국전쟁이 터졌다. 최 대령은 그해 6월 26일 무장병력 600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침투하려던 1000t급 북한 수송선을 대한해협에서 격침하는 데 공을 세웠다. 첫 해군 승전이었다. 고인은 자서전 『바다를 품은 백두산』에서 부대원들에게 "죽을 각오로 싸우고, 죽더라도 깨끗이 죽자. 세탁한 옷으로 갈아입고 전투에 임하라"고 독려했다고 회고했다.

최 대령은 전쟁터에선 호걸이었지만, 전장 밖에선 따뜻한 군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함경북도 성진항에 입항했다가 폐허가 된 거리를 방황하는 북한 모녀를 발견하고 “대한민국 군인은 공산당 핍박에 시달리는 북한 동포를 도와드리는 사명이 있다”며 쌀 한 가마니를 가져다줬다.

이후 인천상륙작전 등 한국전쟁의 주요 전투에 참전해 공을 세우고, 1964년 해군 최초의 구축함인 충무함 함장을 맡으며 6개의 훈장을 가슴에 달았다. 51세의 나이로 군을 떠난 뒤엔 훈장 대신 가장의 무게를 짊어졌다. 고인은 저서에서 “가족의 생계 책임은 가장이 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창 공부 중이었고 결혼도 해야 하니, 집에서 쉴 상황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최 전 원장의 모친이 1989년 손수 스웨터를 짜 남대문 시장에서 팔다가 넘어져 허리 골절상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고인은 냉장회사와 기업체 등에서 일한 뒤, 한국 식품을 중동 이란에 수출해 판매하는 사업도 하면서 생계를 책임졌다.

가족 모임서도 애국가 제창…집에는 태극기 걸려

지난해 6.25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오른쪽)이 해군가가 울려퍼지자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쳐]

지난해 6.25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오른쪽)이 해군가가 울려퍼지자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유튜브 캡쳐]

고인의 삶은 ‘애국’이란 두 글자로 요약됐다. 동생 두 명은 해병대 대령, 해군 부사관으로 전역했고 아들 넷도 육·해·공군에서 장교로 복무(최 전 원장은 육군 법무관 출신)한 병역 명문가였다. 고인은 생전 “내가 육·해·공·해병대 통합군사령관인 셈이고, 우리 참모장은 맏며느리”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설날 등 명절 가족모임도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가족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등을 했다. 최 전 원장의 죽마고우인 강명훈 변호사는 “최 대령의 자택 벽면에 365일 태극기가 걸려 있을 정도로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최 대령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 한국전쟁 70주년 행사에선 부석종 해군참모총장과 나란히 단상에 올라 해군가가 끝날 때까지 거수경례를 해 화제를 모았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들을 생각하는 최 대령의 마음도 각별했다. 최 전 원장은 2017년 12월 감사원장직 요청을 받고 부친에게 전화를 걸었고, 최 대령은 “오직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봉사하면 된다”고 격려했다. 임명식 하루 전날엔 최 전 원장을 집으로 불러 ‘단기출진(單騎出陣), 불면고전(不免苦戰), 천우신조(天佑神助), 탕정구국(蕩定救國)’이라는 글귀를 써줬다. ‘홀로 진지를 박차고 나가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럴 때 하늘에 도움을 구하면 나라를 안정시키고 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왼쪽)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 전 원장 부친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에서 인사하고 있다. [조문객 제공]

최재형 전 감사원장(왼쪽)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최 전 원장 부친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에서 인사하고 있다. [조문객 제공]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8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조문객 제공]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8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조문객 제공]

이날 빈소는 노병의 마지막 길을 추모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야권 대선주자이자 잠재적인 대선 경쟁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오후 네시쯤 빈소를 찾아 약 50분간 빈소에 머물렀다. 윤 전 총장은 “최 전 원장은 존경받는 감사원장이었고, 어르신(최 대령)도 6·25 때 나라를 지키신 모든 국민이 존경하는 분이라 당연히 와야 할 자리”라고 말했다. 최 전 원장과 정치적 공감대가 있었냐는 질문엔 “너무 많이 나간 추측이고, 그런 건 없었다. 인사만 나눴고, 조문 온 분들과 일상적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 및 정진석·권영세·권성동·김도읍·윤한홍 의원 등 야권 인사들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조문했다. 김 원내대표는 조문 뒤 취재진과 만나 “(최 전 원장이) 기왕 우리 당에 입당한다면, 빠르게 입당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고, 권영세 의원은 “어떤 형식으로 입당할지 (최 전 원장과) 긴밀하게 얘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근조기와 근조화환을 보내 추모의 뜻을 전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와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도 오후 5시 30분쯤 빈소를 찾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9일 조문할 예정이다. 고인의 발인은 오는 10일 오전 9시이고 장지는 국립 대전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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