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찬호의 시선

입당 미루는 윤석열의 외곽 행보, 이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8 00:33

업데이트 2021.07.0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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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중국식당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오찬 회동을 마친 뒤 백 브리핑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중국식당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오찬 회동을 마친 뒤 백 브리핑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할매(박근혜) 노후 보장은 해줘야 할 것 아닌교."
 5년 전인 2016년 4월 총선 직전, 박근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찾아와 이렇게 말하며 "대구·경북(TK) 지역구 (25개) 공천은 청와대에 넘기라"고 요구했다. 김 대표는 "말도 안 된다"며 거절했다. 얼마 뒤 관계자는 다시 찾아와 "그럼 대구 지역구(12개)만이라도 청와대에 주라"고 했다. 김 대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관계자는 물러서지 않고 세 번째로 김 대표를 찾아와 "정 공천권 못 주겠다면 대구에서 누구누구는 공천 안된다는 비토권(거부권)이라도 달라"고 했다. 유승민·주호영 등 박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힌 인사들을 낙천시킬 권한이라도 달라는 뜻이었다. 김 대표는 "안된다"고 했지만, 당을 무시하고 자기편(TK)만 챙기는 청와대의 일방주의에 몸을 떨었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는 "말 안 듣는 비박들 빼고 영남 친박 중심으로 80명만 당선시켜도 국정 끌고 갈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 '영남 꼴통'이란 비아냥을 자초한 지독한 지역주의와 폐쇄주의가 박근혜 정권의 조기 몰락을 가져온 원인임은 누구나 안다.
새누리당이 국민의힘으로 바뀌고 대표마저 서울내기 30대 이준석이 당선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5·18 묘역에서 무릎 사과를 하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성하면서 호남에 다가가는 노력을 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5년 전 청와대의 '공천권 삼고초려'일화에서 드러나듯 국민의힘의 속살엔 여전히 영남 지역주의가 착근돼있다. 내장지방처럼 제거하기 힘든 이 지역주의의 뿌리를 뽑자면 기존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국민의힘 입당을 한사코 미루며 외곽을 훑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눈길이 간다. 그는 호남에서 많게는 27%(리얼미터,6월24일 조사)까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입당과 함께 이 숫자는 급락할 게 뻔하다. 그래선지 현재의 호남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기호 2번(국민의힘) 후보로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방안에 윤 전 총장 측이 골몰하고 있다는 얘기가 돈다.
 국민의힘이 보여온 영남 지역주의 색채를 고려할 때 윤 전 총장의 '친호남 행보'는 나름의 정치적 고려가  담긴 고육책일 수 있겠다. 사실 호남이라고 모든 주민이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호남에도 보수 성향 사람들이 있고, 민주당을 찍었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불통과 실정에 실망해 다른 당을 찍고 싶은 '탈 진보 주민'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툭하면 5·18 망언을 쏟아내고 영남 지역주의 본색을 감추지 못하는 국민의힘에는 표 주기가 꺼려져 민주당의 '인질'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윤 전 총장의 호남 행보는 이런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돼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의 국민의힘 지지기반만으로는 안되고 플러스 알파가 갖춰져야 한다. 윤 전 총장이 "도와달라"며 전화 통화를 한 전북 이용호 의원(무소속,재선, 임실·순창·남원) 이나 산업화 역사를 긍정하며 포용 정책을 펼친 동교동계 같은 세력이 아무 부담 없이 합류할 수 있는 유연하고 중도적인 구조로 '윤석열', 나아가 국민의힘이 리모델링돼야 한다는 거다.
 마침 상황이 나쁘지 않다. 이용호 의원이 민주당원과 일반 주민 대상으로 각각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의원의 민주당 복당을 찬성하는 비율은 당원 조사에서 76%였으나 주민 조사에선 68%에 그쳤다. 일반 주민들 사이에선 "이용호 당신같이 괜찮은 사람이 뭣 하러 민주당에 가느냐"는 반응이 상당해 복당 찬성 여론이 8%P 낮게 나왔다는 것이다. 8%P는 민주당에 염증이 난 호남 주민이 적지 않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추미애 법무장관과 전쟁을 벌였던 지난해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윤석열 지지 화환 진열 운동을 주도한 김상진 자유연대 사무총장은 호남 출신이다. 그의 얘기다.
 "국민의힘 사람들, 호남만 가면 습관적으로 5·18 묘역 찾는데 그런 전시성 방문 별 의미없다. 호남은 거기 갇혀있지 않다. 진보 정부건 보수 정부건 집권하면 호남에 관직·예산으로 '시혜' 제스처를 취하는데 그 과실을 얻어가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 있다.'호남 정신'은 실종되고 '호남 기득권'만 판치는 현실이 됐다. 이를 무시하고 이벤트성으로 5·18 묘역 찾은 뒤 올라가 버리면 호남인들의 가슴은 더욱 헛헛할 뿐이다. 정말 호남에 다가가겠다면 문재인 정부 정책을 실명 비판했다가 친문들에게 공격을 받은 카페 자영업자 같은 민생 현장을 찾아가라. 진짜 호남은 거기 있다."

윤석열, 호남 껴안기 행보 가속화
국민의힘도 '서진' 강조하나 한계
이벤트 아니라 진정성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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