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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영웅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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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5182만 명의 대통령이 되면 어떤 심리 상태가 될까. 잘 알 수 없는 건 누구라도 대통령을 해볼 확률이 제로인 때문이다.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스티븐 웨인 미 조지타운대 교수의 답이 가장 가까운 듯싶다. “대통령 당선 뒤엔 무한한 자신감, 자존감이 생긴다. 누가 조언하고 듣는 척해도 마음속에선 ‘당신이 그렇게도 똑똑하고 훌륭하다면 왜 대통령은 못 된 거냐’는 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신의 과오를 쉽게 인정하고 바꾸질 못한다. 미국 대통령이 첫 번째 하는 일은 부통령에게 ‘당신은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걸 각인시키는 일이다.”

모든 걸 혼자 다한다는 약속은 #거짓말 되는 게 시대의 변화상 #시대와 사람과 후대에 겸손한 #대선주자들의 성찰을 기대하며

대선 정국 초반부터 인신 공방으로 치닫는 걸 보니 “국가도 사람처럼 휴식이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도덕성, 결단·추진·포용력, 정의감 등의 리더십과 인간적 자질을 두루 갖춘 대통령이라면 좋을 터다. 그런데 하나만 고르라면 ‘겸손’을 꼽고 싶다. 정치인에겐 가장 어려운 소양일 수 있겠다.

한국의 대통령은 전체 유권자 중 30%대의 득표로 당선된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의 지지율은 각각 34.3, 30.5, 39.0, 31.6%였다. 반대했거나 “투표장 가서 찍어주긴 그렇고, 잘하는지는 지켜보겠다”는 나라의 주인들이 70%에 육박한다. 제왕 같은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착각은 금물이다. 선택 유보가 늘 60~70%의 다수다. 그러므로 국민의 보편적 정서를 좇고 또 다른 선출 심부름꾼들인 여야 의회와의 협치로 초당파적 국정을 해야 마땅한 이치다.

시대에의 겸손이 첫째다. 영웅이란 이제 없다. 디지털 혁신 시대, 한 사람의 만기친람은 불가능이다. 우리 삶 곳곳에 녹아든 ‘모바일’ 하나를 생전에 이해하기도 벅찬 시대다. 비트코인은 ‘기축통화’ 개념을 비웃고, 부동산은 증세·규제라는 대통령의 나홀로 경제 구상과는 거꾸로 달린다. 영끌 동학개미는 상식과 예상을 조소한다. 융합의 시대, 한 분야의 박사란 지혜의 미아(迷兒)가 되기 십상이다. 미·중 갈등 속의 좌표, 북한 비핵화, 일본과의 관계개선이라는 고차 방정식을 한 명의 정치적 천재가 쾌도난마하는 건 기대 난망이다. 기본소득 등의 복지와 건전 재정의 최상의 접점은 도대체 어디일까. 내가 다 한다는 ‘큰바위 얼굴’은 그래서 사기꾼일 확률이 높다. 영웅은 늘 진화·성장하는 ‘시민사회’뿐이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겸허해져야 한다. ‘정의·공정·평등’으로 늘 미화된 “앙상한 이념”으로 국민 편가르기 일쑤였다. 반대편 내몰린 이들, 늘 ‘죄의식’을 강요받는다. 가학적 범죄다. 좋은 직업 얻어 돈 많이 벌고, 평가 받고, 재테크도 잘하고, 좋은 집 살며, 자녀 잘 키우고, 할 말도 해가며, 그리 행복하게 살고픈 게 인간의 본성이다. 이념의 ‘먹물’ 인민군 장교가 동막골 이장에게 물었다. “큰소리 한 번 치지 않고 주민들 휘어잡은 영도력의 비결은 뭐임메.” 이장은 답한다. “뭐이를 마이 멕이야지 뭐….”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문명과 역사를 이렇게 진화시켜 온 건 결국 인간의 본성이다. 이를 무시하고 죄의식을 안겨 온 그 영명한 ‘신줏단지 이념’이란 도대체 뭔가. 투표율, 목소리 낮다고 무시해 온 후대들에게도 부디 겸손해지라. 이번 대선은 2030들의 미래 자산과 표를 바꿔치려는 표퓰리스트에 철퇴를 가할 첫 ‘세대 심판’이 될 것이니….

화려하기 그지없는 게 주자들의 세속적 스펙. 총리·국회의장·당대표·도지사·장관, 검찰총장…. 각 분야에서 체득한 자신의 좁고 작은(당사자야 세상 모두라 생각하지만) 지혜가 출마할 원천이 됐을 터다. 입신양명의 캠프에 줄 댄 자칭 전문가들이 득표용 정책을 양산할 게다. 상대 주자에 ‘혐오’를 덧씌우는 네거티브는 물론이다. 승리의 전리품에 마음 부풀며 모두 집단최면에 빠져든다. 과오의 인정이나 변화를 거부하는 그 출발점은 캠프다. 부동산, 소득주도 성장과 탈원전, 동맹 관리 등의 패착 수순은 이 악순환의 결과였다.

대통령제의 최면, 오만이 낳은 역사상 최대 참극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었다. 자신들이 앉혀 놓은 남베트남 응오딘지엠의 무능·부패 정권보다 베트민의 후 아저씨(호찌민)가 훨씬 더 인기가 좋다는 현장의 ‘진실’을 대통령 주변만 애써 무시하고 뭉개며 빚어진 실패였다.

겸손은 ‘이성’이다. 정치란 반대에 부닥치면 소리 지르기 마련이다. 비판하는 이의 허물 먼저 생각하는 게 ‘감정’이다. 대통령이 그 전선의 한복판에 서면 나라는 소모적 난장판이 된다. 과오를 인정하는 게 이성의 힘이다. 권력보다는 지혜로 문제를 풀어가야 할 이 누구인가. 대통령이다. 차기 대통령은 그래서 시대와,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한다. 나 혼자론 턱없으니 각 분야 유능한 이들 널리 잘 골라 적재적소에 쓰라. 국민과 현자(賢者)를 경청하고, 과오는 인정하며 고쳐나가는 것. 바로 겸손함이다. ‘대권’ ‘통치’ 따위 박물관에 집어넣을 시간이다. 여기에 무슨 진보와 보수가, 코드와 이념과 캠프가 있겠는가.

거꾸로 특별함과 창조로의 새 출발 역시 “익숙한 것에 완전함 없다”는 성찰이 출발점이다. 링컨이 오래전 가르쳐준 대로. “탁월한 천재는 익숙한 길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곳을 원할 것이다.” 답은 겸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