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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동현의 이코노믹스

빚으로 쌓은 자산 버블, 더 방치할 수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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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은행, 왜 금리인상 카드 빼들었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한국은행이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두 가지 상반된 지표다. 첫째, 〈그림 1〉에서 보듯 전반적인 금융시스템 상황을 보여주는 금융안정지수는 지난해 4월 위기 단계 진입 이후 지속해서 개선돼 지금은 매우 안정돼 있다. 둘째, 반면 금융 불균형이 심화하면서 전반적인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나타내는 금융취약성 지수는 〈그림 2〉에서 보듯 2017년 이후 상승추세를 그리다 최근에는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80%까지 치솟았다. 두 지표를 종합하면 현재 금융시스템은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압력이 증가하고 있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금융취약성, 금융위기 수준의 80% #부동산·주식·가상화폐에 거품 심각 #위기 오는데 위기감 없는게 더 위험 #붕괴 대비해 현금 확보 나선 월가

급기야 지난달 11일 한은 창립 기념사에서 이주열 총재는 금융 불균형이 누적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통화정책을 여기에 유의해서 조정할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준 금리를 한두 번 올린다고 해도 통화정책은 완화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안정지수

금융안정지수

한은이 언급한 금융 불균형(fiscal imbalance)은 레버리지(차입)가 과도한 상태에서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한마디로 빚으로 쌓아 올린 자산가격 버블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데, 신용수량가설이 주장하는 금융위기 가능성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금융 불균형의 증가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한은이 마침내 금리인상 카드를 빼든 것이다.

〈그림 3〉에서 보듯 우리나라 민간부채 비율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까지만 해도 선진국 평균과 비슷했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통해 코로나 발발 전까지 민간부채를 하향 안정화시켜왔다. 반면에 신흥국, 특히 중국의 민간부채 비율은 2011년 하반기부터 2016년 초까지 급증한 후 안정적인 행태를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17년까지는 민간부채비율이 미세하게 증가하다 주택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2018년 이후 급등하는 모습을 보여 선진국이나 다른 신흥국과는 다른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주요국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 추이

주요국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 추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민간부채 비율은 214.9%로 이 비율을 보고하는 43개국 중 13위로 높은 수준이다. 민간부채 중 가계부채는 103.8%, 기업부채는 111.1%로 엇비슷한 수준인데 43개국 중 가계부채 비율은 7위, 기업부채 비율은 17위에 해당한다. 가계부채의 경우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은 개인 간 대출인 전세나 월세 보증금은 제외된 수치다. 전세 및 월세 보증금의 경우 정확한 추산이 어렵지만 대체로 GDP의 40% 선으로 추정되는데 이것까지 합산할 경우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스위스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 기업부채의 경우 총량도 총량이지만 양극화 현상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에도 못 미치는 한계기업의 비중이 무려 40%에 달한다. 한마디로 정부뿐 아니라 가계나 기업 등 모두 경제구성원들이 빚에 짓눌려 있다.

이러한 부채 중 상당 부분이 부동산·주식·가상화폐 등으로 흘러가 자산가격에 심각한 거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아파트 가격은 지난 4년간 거의 두 배 폭등하면서 벼락 거지를 양산하고 패닉 바잉을 불러일으켰다. 부동산을 추격 매수할 수 없는 청년층은 주식이나 가상화폐에 영끌 투자하면서 거의 모든 자산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가장 변동성이 크고 거품의 정도가 큰 가상화폐부터 거품이 터지기 시작했지만, 주식·부동산은 아직도 고공행진 중이다.

모든 위기에서 필요조건은 어떤 형태로든 과도하게 누적된 부채다. 그리고 그렇게 빚으로 자산가격에 거품이 형성된다면 대내외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금융취약지수가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런 취약성이다. 경제 주체들의 일부라도 위기감을 느낀다면 금융중개 기능의 일부가 약화하면서 금융안정지수 역시 조금은 악화되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금융안정지수는 반대로 하향 안정화되고 있다. 위기가 차츰 다가오는데 아무런 위기의식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 상황이 더 위험해 보인다. 참고로 최근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을 보이는 가운데 JP모건을 비롯한 일부 월가의 주요 투자자들이 현금 확보에 나섰다.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현금 확보라니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과 자산가격 버블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버블이 터졌을 때 저가 매수를 하기 위한 선제적 움직임이다. 지금 국내 금융시장엔 이런 위기의식이 너무 결여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국 중앙은행, 자산 버블에 적극 대응

안동현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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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금리 인상 카드를 선제적으로 꺼낸 것은 바로 이런 상황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한은의 이번 대응은 어쩌면 한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인식의 변화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은 ‘보편성의 원칙’에 입각해 펼친다. ‘보편성’과 동치는 ‘무차별성’이다.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이나 고용안정과 같이 경제 전반에 걸친 거시 지표를 목표로 설정하고 특정 시장이나 산업에 대한 개입은 자제한다. 결국 통화정책을 ‘무딘 칼(blunt knife)’로 표현하는 것이고, 이 같은 보편성의 원칙은 통화정책의 전통이자 정통으로 굳혀졌다.

이러한 전통적 견해는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대한 도전을 맞게 되고 수정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해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 완화와 함께 특정 시장 또는 산업에 직접 유동성을 지원하는 ‘질적 완화’를 병용하면서 이러한 원칙이 깨졌다.

‘보편성의 원칙’ 수정은 다른 한편으론 통화정책이 자산가격 버블에 대응할 통로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산가격 거품에 대해서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거시건전성 규제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견해가 주류였다. 자산시장에 버블이 형성될 경우, 통화 긴축 시점을 오판할 경우, 거품뿐 아니라 실물경제까지 훼손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양 부위만 도려내는 거시건전성 규제(macro-prudential regulation)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일반론적인 견해였다. 거시건전성 규제는 ‘거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정책은 ‘미시적’으로 해당 금융시장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통해 시스템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모든 위기는 거의 예외 없이 금융부문에서 촉발됐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거시건전성 규제의 총본산인 국제결제은행(BIS)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다. 은행에 대한 자기자본규제부터 온갖 거시건전성 규제를 내놓았지만, 금융위기는 오히려 더 빈번해졌다.

결국 거시건전성 규제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무딘 칼이지만, 효과가 훨씬 강력한 통화정책이 자산가격 버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다. 물론 아직도 전통적 통화론자들은 ‘물가안정은 통화정책’, ‘자산가격 버블은 거시건전성 규제’라는 이분법적 견해를 견지하고 버블에 관한 한 통화정책은 버블이 터질 경우 ‘대걸레로 뒤치다꺼리(mopping)’를 하는 것으로 역할을 제한하고 있다.

한은도 자산가격 버블 파이터 자임한 듯

반면에 최근 이러한 소극적 통화정책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버블이 터질 경우 금융위기를 통해 결국은 경기침체가 초래되니 ‘물가안정’이란 중앙은행 고유의 목표와 상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에 대한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중앙은행이 판단할 문제다.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으나 그런 면에서 이번에 한은이 금융 불균형에 우려를 표하면서 연내 금리 인상을 시사한 점은 향후 한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뿐 아니라 자산가격 버블 파이터로도 나서겠다는 점을 부분적으로나마 시사했다고 보인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은과 이주열 총재의 입장 표명은 한은 역사에 하나의 중대한 변화로 기록될 것 같다.

키워드

신용수량가설 (The Quantity Theory of Credit)

기존의 화폐 수량가설을 수정한 것으로 양적 완화를 주창한 리하르트 베르너(Richard Werner) 사우스햄프턴대 교수가 주장했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증가시키면 두 가지 형태의 거래가 증가하게 된다. 한 가지는 명목 GDP를 증가시키는 거래(GDP 거래)로 실질성장률을 높이든지 물가상승을 동반한다. 두 번째는 명목 GDP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래(비GDP 거래)로 자산가격의 상승만 가져온다. 만약 비GDP 거래에 투입된 통화량 증가율이 GDP 거래에 투입된 통화량 증가율보다 높을 경우 자산가격 거품이 형성되고 향후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