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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만에 다시 만난 남매…외교행낭으로 온 유전자가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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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여름 인천 중구 배다리시장 인근에서 실종돼 가족과 헤어진 진명숙(66·앞줄 왼쪽)씨가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62년 만에 큰 오빠 정형곤(76·앞줄 오른쪽)씨와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경찰청

1959년 여름 인천 중구 배다리시장 인근에서 실종돼 가족과 헤어진 진명숙(66·앞줄 왼쪽)씨가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62년 만에 큰 오빠 정형곤(76·앞줄 오른쪽)씨와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경찰청

62년 전 헤어진 남매는 태평양도, 기나긴 세월도 건널 수 있었다. 남매는 서로 똑 닮은 유전자를 갖고 있었고, 경찰의 유전자 분석은 인연을 다시 어어준 다리가 됐다. 극적인 상봉의 시간을 가진 남매는 “날마다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결국 찾았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는 네 살 때 가족과 헤어졌던 진명숙(66)씨가 둘째 오빠 정형식(68)씨와 첫째 오빠 정형곤(76)씨를 62년 만에 상봉했다고 5일 밝혔다. 둘째 오빠 형식씨가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어 이들의 만남은 화상으로 이뤄졌다.

1959년 헤어진 남매, 유전자 분석으로 찾아 

경찰에 따르면 진씨는 1959년 인천 중구 배다리시장 인근에서 둘째 오빠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가다 길을 잃었다. 실종 당시 진씨는 4세, 형식씨는 6세였다. 진씨는 인천 소재 보육원을 거쳐 충남에 거주하는 한 수녀에게 입양됐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어버린 탓에 진씨는 본명을 기억하지 못했고, 입양 과정에서 성(姓)도 바뀌었다고 한다.

진씨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족을 찾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는 등 노력을 했다. 2019년 11월엔 경찰 ‘유전자 분석 제도’에 기대를 걸었다. 경찰이 장기 실종자 발견을 위해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진씨는 자신의 유전자를 등록하고 경찰청의 유전자 대조를 통해 가족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1959년 여름 인천 중구 배다리시장 인근에서 실종돼 가족과 헤어진 진명숙(왼쪽ㆍ66)씨가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62년 만에 큰 오빠 정형곤(왼쪽에서 두번째ㆍ76)씨 등 가족과 상봉해 캐나다에 살고 있는 작은 오빠 정형식(화면 왼쪽ㆍ68)씨와 영상통화하고 있다. 사진 경찰청

1959년 여름 인천 중구 배다리시장 인근에서 실종돼 가족과 헤어진 진명숙(왼쪽ㆍ66)씨가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62년 만에 큰 오빠 정형곤(왼쪽에서 두번째ㆍ76)씨 등 가족과 상봉해 캐나다에 살고 있는 작은 오빠 정형식(화면 왼쪽ㆍ68)씨와 영상통화하고 있다. 사진 경찰청

진씨의 작은 오빠 형식씨는 캐나다에 이민을 한 후에도 동생을 찾고 있었다. 오빠는 2014년 경찰에 유전자를 등록했다. 경찰은 진씨와 실종 경위가 비슷한 대상자 군을 선별하는 중 형식씨를 발견하게 됐다. 이후 유전자 1대1 대조가 이뤄졌다. ‘해외 한인 입양인 유전자 분석 제도’를 통해 유전자 재채취를 진행했다. 해외 한인 입양인 유전자 분석제도는 지난해 1월부터 경찰청이 외교부·복지부와 함께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해외 입양 한인의 유전자를 외교행낭을 통해 경찰청에 송부한다. 임희진 경찰청 실종정책계장은 “형식씨는 입양인이 아닌 이민자인데 해당 프로그램의 방식을 빌렸다”고 설명했다.

“기적 같다”…가족 상봉 639건

극적으로 가족과 상봉한 여동생 진씨는 “포기하지 않고 유전자를 등록한 덕분에 기적처럼 가족을 만나게 됐다. 경찰에 감사드리며 남은 시간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했다. 형식씨도 “동생을 찾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했다”면서 “다른 실종자 가족들께 이 소식이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유전자 분석 제도를 이용한 사람은 지난 5월 기준 약 3만 8300명이다. 이 중 2004년 이후 300여건의 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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