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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서 불뿜는" 총알 샤캐리, 올림픽 무산에 美 난리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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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샤캐리 리처드슨(왼쪽 첫번째)이 미국 여자 100m 단거리 경기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6월 샤캐리 리처드슨(왼쪽 첫번째)이 미국 여자 100m 단거리 경기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는 23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육상 단거리 100m 경기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미국의 샤캐리 리처드슨이 마리화나(대마초) 양성 반응으로 한 달 간 선수 자격이 정지되면서 미국 사회가 논란에 휩싸였다.

美 반도핑기구 "마리화나 양성 반응" #100m 금메달 기대에 정치권도 반발 #샤캐리 막자 인종차별 논란으로 번져

최근 육상 스타로 급부상한 리처드슨의 갑작스런 출전 제한을 놓고 미국의 오랜 정치적 이슈인 마리화나 합법화 문제와 인종차별 문제까지 거론되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리처드슨이 빠지면서 4위였던 백인 선수 제나 프란디나가 올림픽 출전 티켓을 이어받게 되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이하 현지시간) “리처드슨의 양성 판정은 이번 도쿄 올림픽이 미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운동 선수 없이 치러지게 된다는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도했다. 또 이번 사건이 올림픽 관료주의와 미국 안팎의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인식 변화 등과 충돌하며 정치적, 논쟁적 역사를 다시금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신예 스프린터 샤캐리 리처드슨.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의 신예 스프린터 샤캐리 리처드슨. [인스타그램 캡처]

앞서 미반도핑기구(USADA)는 2일 리처드슨이 소변검사에서 대마초 양성 반응을 보여 1개월 선수 자격 정지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리처드슨은 자신의 주특기인 100m 달리기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한달 후 제한이 풀리면 일부 계주 경기에는 출전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은 있다. 리처드슨은 “마리화나를 사용한 것이 맞다”며 사과하면서도 “생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혼란스럽고 슬픈 마음에 손을 댔다”고 해명했다.

논란은 정치권으로 이어졌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과 제이미 래스킨 하원의원은 즉각 “리처드슨의 정지 조치를 철회해달라”는 공식 서한을 USADA에 보냈다고 밝혔다.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은 “USADA의 이번 결정에는 과학적가 근거 없다”며 “마리화나 금지법은 조직적인 인종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리처드슨이 마리화나를 사용했던 오리건주는 주법에서 마리화나를 합법화하고 있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배우 세스 로건도 “이번 자격 박탈은 혐오와 인종차별에 따른 미친 짓”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등 진보성향 배우·정치인들은 미 규제당국의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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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에 따르면 마리화나 합법화 문제는 1980년대부터 미국 안팎에서 논쟁적인 사회 이슈였다. 98년도 빌 클린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며 마리화나 퇴치 정책을 강력하게 폈지만, 흑인 등 유색인종 규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미국 내에서 마리화나를 향유하는 인구는 인종마다 비슷하지만, 백인에 비해 흑인이 3배 가량 단속ㆍ체포될 가능성이 많이 된다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조사 결과도 있었다. 지난해 미 하원이 연방 차원의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킬 당시 미 성인의 3명 중 2명이 합법화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훈련 중을 제외하고 경기 도중 금지약물로 마리화나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마리화나가 스테로이드제처럼 운동 선수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근거는 빈약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WADA 초대 회장을 지낸 딕 파운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오늘날엔 해당 규정 전체를 삭제하거나, 경고 조치 등 최소한의 제재 규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WP에 말했다.

리처드슨은 지난 6월 오리건주에서 열린 미 여자 단거리 육상선수 선발대회에서 10초86을 기록하며 도쿄 올림픽 금메달 가능성을 보였다. 자메이카의 셀리 앤 프레이저 프라이스 선수와 올림픽 우승 후보로 거론되며 두 사람의 대결에 전세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미국의 신예 스프린터 샤캐리 리처드슨을 응원하는 트윗글을 올린 미셸 오바마. "우리는 그녀가 매우 자랑스럽다. 도쿄에서 보고싶다"는 내용이다. 리처드슨은 이후 도핑 테스트에서 마리화나 양성반응으로 한 달 선수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트위터 캡처]

미국의 신예 스프린터 샤캐리 리처드슨을 응원하는 트윗글을 올린 미셸 오바마. "우리는 그녀가 매우 자랑스럽다. 도쿄에서 보고싶다"는 내용이다. 리처드슨은 이후 도핑 테스트에서 마리화나 양성반응으로 한 달 선수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트위터 캡처]

실력 뿐 아니라 트랙 위의 파격적인 패션도 화제거리였다. 리처드슨은 매 경기마다 푸른색, 오렌지색으로 염색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화려하게 치장한 손톱과 장난스러운 표정 때문에 ‘육상 트랙 위의 악동’ 우사인 볼트의 여자 버전으로도 비교됐다. “리처드슨이 달릴 땐 머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리처드슨은 생모로부터 버려져 할머니 손에 자랐고, 고등학교 무렵부터 자립해 생활해왔다고 한다.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숨기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원하는 걸 숨기도록 요청받았던 과거 세대 여성들과 나는 다르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며 조 바이든 대통령도 입장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3일 관련 질문을 받고 “해당 규정을 유지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이지만, 규정은 규정”이라면서도 “나는 (USADA의 결정을 받아들인) 리처드슨의 대응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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