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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놀기’란 놀아제끼는 것과 잉여시간 보내는 것의 중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필진인사이드(3) '원초적 놀기본능' 박헌정 필진

본업과 관련이 없더라도, 전문적인 정보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진이 될 수 있는 곳, [더,오래]. 의미 있는 취미와 소소한 일상을 더,오래에서 글로 담고 있는 장기 연재 필진 6인을 인터뷰와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주〉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고들 하죠. 은퇴 이후 많은 은퇴자가 하게 되는 예상 밖의 고민은 '어떻게 놀아야 하나?'라고 해요. 아무래도 직장에 다니면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걱정 없이 놀아본 경험이 많이 없을 테니까요. 당신은 은퇴 이후 어떤 삶을 준비하고 있나요? 자신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으신가요?

박헌정 필진은 현재 25년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수필가’라는 직업으로 본인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인생 2막에 갖게 된 새로운 모습이 또 다른 삶의 재미를 찾게 해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연재명 '원초적 놀기본능'의 뜻이 궁금해요.

'반퇴' 이후에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잘 ‘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주변에는 잘 노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현역 시절에는 다들 놀고 싶다고 하더니 정작 책임 다하고 은퇴하곤 마음 편히 노는 사람도 별로 없고요.

우리 사회에서는 ‘놀기’라고 하면 술 마시고 여행 다니고 골프 치고…. 뭔가 바쁘고 왕성하게 놀아제끼는 것, 또는 일을 갖지 못해 우울하게 잉여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중간의, 달뜨지 않고 담담하게 살면서도 자신감 있게 자기 자신을 지키고 만들어가며 사는 모습을 ‘놀기’라는 단어에 담고 싶었습니다. 사회적인 부가가치 생산에서 한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는 방법을 찾아보고 글로써 제안하겠다는 생각에서 붙인 제목입니다.

직장인 생활과는 전혀 다른, 글쓰기를 본업으로 삼는 삶은 이전의 삶과 어떻게 다른가요?

직장생활은 그 공동체를 위해 그들이 기대하는 정답을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내가 생각해서 주장하는 답이 틀릴 때도 많지요. 대신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가정을 유지하고 아이들도 잘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삶의 기본요소를 어느 정도 충족했기에 그쪽 세계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약간의 뿌리라도 내려보고 싶어 명예퇴직하고 나왔죠.

구체적으로 들려주신다면요.

그렇게 하고 싶은대로 ‘독립’한 결과, 물질적으로는 지난 2년 반 동안 수입 1300만원이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직장 시절에는 하기 힘들었던 독서를 실컷 하고 있고, 글도 여유를 가지고 쓸 수 있어 인생 2막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살게 되었죠.

1년에 한 번씩 부부동반으로 ‘해외 한 달 살기’를 기획해서 실천하면서 강연 같은 일도 할 수 있었고, 올 하반기부터는 관심 갖고 있던 사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도 시작할 계획입니다. 완전히 다른 삶이죠. 인생 1막과 달리 사회와 가족을 위한 삶에서 나를 위한 삶으로,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왕성한 삶에서 작고 조용하고 차분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주거지도 서울에서 지방도시인 전주로 바뀌었고요.

연재 중 있었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네이버와 다음 포털에서 조회수와 댓글 수 1위를 몇 번 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연락이 많이 오죠. 글에 공감하는 사람, 의견을 보내는 사람, 오랜만에 연락이 된 사람 등.

그런 글에는 악플도 많습니다. 한 주제에 대해 여러 입장을 폭넓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균형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데도 자기와 관련 있는 주제어를 보면 글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자기감정만 담아 모질게 공격하는 댓글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와 반려동물 문화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 (저도 강아지를 키우지만)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 개를 그렇게 대접하려고 하냐?”고 욕하고,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왜 그 정도밖에 사랑하지 않냐?”며 욕합니다.

100회 가까이 쓰다 보니 처음보다는 악플로 인한 상처가 덜하지만 그래도 타격은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포탈의 댓글정책이 바뀌어 전보다 악플이 덜한 것 같습니다.

더,오래에서 발행한 기사 중 가장 애정이 가는 기사를 이유와 곁들여 알려주세요.

관련기사

65회 [식당에서 "이모님!" 대신 "고모님!"하는 사람 왜 없을까]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이모와 고모에 대한 글입니다.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고,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을 스스로 깨달은 원고였죠. ‘왜 고모보다 이모가 더 친절하고 가깝게 느껴질까?’ 궁금했는데 개인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더군요.  이처럼 사회적으로 분명히 있는 현상이고 일단 화제가 되면 누구나 공감하며 생각해봄 직한 문제인데 지금껏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문제를 발견해서 정답을 찾아가는 게 재미있습니다. 평소 일상에 대한 관찰이 가져다준 성과죠. 이 글은 개인사적 궁금증에서 구성하기 시작했지만 주변 인터뷰와 추가 취재 등 나름대로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조회수와 댓글 수가 폭발적이어서 놀랐고 방송에도 이 내용이 인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생각지 못한 새로운 개념을 찾아내서 정리해냈을 때도 기쁩니다. 예를 들면, 친절의 반대는 불친절이 아니라 ‘무친절’이라는 생각(71회 [친절이 사람 잡겠네, 적당히 친절합시다])이요. 그러니 ‘친절하면 좋지만 불친절하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디쯤(Grey Zone) 친절을 놔두고, 본래 일을 잘 처리해서 상대의 이익을 지켜주자’는 글의 요지에도 나름대로 의미를 느낍니다.

원고 작업 공간을 자랑해주세요!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아무 곳에서나 엄지손가락으로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아요. 특별히 지식적인 내용보다 그때그때 떠올랐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생각이나 표현을 놓치지 않으려면 지하철역, 카페, 식당처럼 아무 데서나 메모할 때가 많지요. 작업공간까지 갈 시간이 없습니다.

박헌정 필진의 작업 공간. [사진 박헌정]

박헌정 필진의 작업 공간. [사진 박헌정]

물론 작업실은 필요합니다. 수시로 메모장 앱이나 개인 블로그에 설익은 생각을 기록하고 그걸 원고로 정리하곤 하는데, 그 작업은 주로 내 방에서 합니다. 작은 한옥이라 집에 공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아내가 좋은 방을 내줬습니다. 겨울에는 추운 대신 여름에는 서늘하지요. 책 읽고 글을 쓰기에 좋습니다.

날이 좋은 날 마당 그늘의 박헌정 필진.

날이 좋은 날 마당 그늘의 박헌정 필진.

가끔 카페에 가서 노트북 펴고 작업하기도 하고 날이 좋으면 마당 그늘에 앉아서 차 마시며 쓰기도 하는데,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성격이 아니라 능률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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