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이혼하지 않은 집보다 아빠와 보내는 시간 많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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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난 아빠도 있어요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라합 옮김
우리교육, 239쪽, 8000원

'깡통소년' '프란츠 이야기'시리즈 등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출신 동화작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는 어린이 문학에는 어린이들 삶의 모든 것이 다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에게 스스로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자는 신념에서다. 이혼 가정의 소녀가 주인공인 이 책에서도 작가의 입장은 유효하다. 주변 환경은 간단치 않지만 소녀는 그것을 인정하고 건강하게 소화해낸다. 아이가 무조건 이혼 소식에 상처를 받고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어른들의 굳어진 시각을 어느 정도 교정해주는 책이다.

소녀 펠리는 자칭 '3분의 1 정상에 드는 아이'다. 부부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하는 현실에서 이혼한 부모를 뒀다는 뜻이다.

펠리는 세 가지 이유에서 부모의 이혼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 부모가 헤어져서 이혼이 결정되기까지의 꿀꿀한 분위기에 휘말리지 않았다, 부모가 맞벌이라 이혼 후에도 쪼들리지 않고 산다, 이혼하지 않은 가정보다 오히려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등등. 펠리는 "세 식구가 한데 뭉쳐 무슨 행복에 겨운 공처럼 죽을 때까지 함께 굴러다니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결론내린다.

펠리의 조숙하고도 막연한 낙천주의는 엄마가 뮌헨에 새 직장을 얻게 되면서 깨진다. 널 위해서라면 이직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사랑니 네 개가 모두 썩어서 아프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하던 엄마. 알고 보니 뮌헨에 애인이 있었다! 엄마는 펠리를 '해리 포터'의 페투니아 이모집을 떠올리게 하는 아네미 이모네로 보낸다. 우여곡절 끝에 이모집을 뛰쳐나온 펠리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빠와 사는 일은 만만치 않다. 아빠는 그릇을 씻으면 바로 행주로 일일이 닦아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지독한 깔끔쟁이였다. 여자 관계 역시 펠리가 미루어 짐작하던 것보다 더 복잡했다. 심지어 펠리는 아빠의 헤어진 여자친구와도 친해진다.

현실은 종종 버겁고 아프지만 어쨌든 사람은 살아나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책은 인생이라는 긴 목록을 어떤 항목으로 채워나갈 것인가는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혼만 해도 그렇다. 작가는 이혼이 무슨 즐거운 가족행사는 아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다같이 사느냐보다 헤어져 살더라도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냐고 묻는다.

펠리는 뮌헨에서 직장을 포기하고 돌아온 엄마에게 "이제부터 아빠와 살겠다"고 선언한다. 엄마와 살든 아빠와 살든 펠리의 삶은 펠리의 것이므로. 쿨하고 솔직한 펠리라는 캐릭터와 위트 가득한 작가의 문장 덕분에 산뜻하게 읽힌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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