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기자의 V토크] 배구로 보답? 그전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흥국생명이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2021~22시즌 선수 등록을 포기했다. 학교 폭력 피해자 및 배구 팬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흥국생명이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2021~22시즌 선수 등록을 포기했다. 학교 폭력 피해자 및 배구 팬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여자배구 흥국생명은 이재영(25)·이다영(25) 쌍둥이 자매를 다음 시즌 선수로 등록하지 않았다. 구단은 입장문을 통해 “이재영·다영의 학교 폭력(학폭)과 관련하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두 선수가 활동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재영·다영 흥국생명 복귀 무산 #인터뷰서 칼 들었던 사실은 인정 #“피 난 건 아냐, 다 풀었다” 주장 #피해자·팬 용서 없이는 복귀 못해

쌍둥이 자매는 지난 2월 학폭 가해자로 지목돼 구단으로부터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둘은 소셜미디어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얼마 후 태도가 바뀌었다. “과장된 사실이 있다”며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고, 사과문을 삭제했다. 4개월이나 흐른 뒤에도 배구 팬들에 사과하지 않았다.

두문불출했던 그들은 코트 복귀가 무산되자 목소리를 냈다. 자매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칼을 들긴 했지만, 피가 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사과 후 (감정을) 풀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재영·다영의 폭력은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로 인해 프로배구는 물론 스포츠계 전체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덮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사과하기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데 무게를 싣는 느낌이다. 스스로 “칼을 들었다”고 인정하고도 그랬다.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싶었지만, 구단이 막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흥국생명이 “시끄러워지면 안 된다. (모기업과 구단) 이미지를 생각하라. 대중 앞에 나선다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압박했다는 게 이재영의 주장이다.

둘은 학폭 당시 미성년자였지만, 지금은 프로 경력이 꽤 있는 성인이다. 징계를 받은 탓에 연봉 지급이 유예되자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법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며 결국 연봉도 받았을 만큼 자주적이었다. 선수들의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사과할 수 있었다. 구단이 그걸 막을 리도 없다.

두 선수의 복귀를 반대하는 팬들의 시위 장면. [연합뉴스]

두 선수의 복귀를 반대하는 팬들의 시위 장면. [연합뉴스]

쌍둥이 자매는 마찬가지로 학폭 사실이 폭로된 남자배구 박상하·송명근의 태도와도 달랐다. 박상하는 “폭력 사실을 시인하지만, ‘감금 폭행’은 아니다”는 말을 남기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한 뒤 복귀했다. 송명근은 피해자를 만나 다시 사과한 뒤 입대했다. 두 선수는 쌍둥이보다 비난을 덜 받았다. 반성하는 태도를 먼저 보였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은 잘못을 저지른 선수가 “야구로 보답하겠다”고 말하는 걸 매우 싫어한다. 야구만 잘하면 팬들이 용서해 줄 거라는 성적 지상주의에 바탕을 둔 말이다. 이재영·다영의 언행도 이와 다르지 않다.

틀렸다. 잘못한 이에게는 용서를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할 권리가 없다. 그걸 결정하는 건 피해자다. 그리고 선수들을 응원해온 팬들이다.

피해자들은 쌍둥이의 언행에 다시 한번 상처받았다. TV 카메라 앞에서 고통스러운 그 날의 기억을 다시 꺼냈을 정도였다. 배구 팬들은 두 선수의 복귀를 반대하는 트럭 시위까지 벌였다. 쌍둥이가 충분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법적·제도적으로는 쌍둥이가 ‘배구로 보답할 기회’는 있다. 자유계약선수(FA)가 됐기 때문에 국내 다른 팀과 계약하거나, 해외리그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용서받지 못한다면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응원받지 못하는 선수를 영입할 팀은 없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