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묘하게 갈렸다…윤석열은 윤봉길, 이재명은 이육사 찾은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년 만에 대통령 선거 재도전에 나선 이재명 경기지사의 출마 선언은 사전 녹화된 비디오 영상으로 1일 공개됐다. 흑백을 배경으로 한 14분 분량의 영상에서 이 지사는 성장ㆍ공정ㆍ기본소득 등 본인의 핵심 키워드를 평소보다 천천히, 힘 있는 목소리로 풀어냈다. 고저장단 변화가 컸던 특유의 억양보다 안정적 어조에 신경 썼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오전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 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영상 캡처. 임현동 기자/20210701

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오전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 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영상 캡처. 임현동 기자/20210701

영상을 통한 비대면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건 여·야 대선 주자를 통틀어 이 지사가 유일하다. 공식적으론 “코로나 시국에 맞춘 비대면 출마선언”이란 수식을 달았다. 지난달 29일 오프라인 행사로 결국 현장 주변에 인파가 모이게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도 대비를 이뤘다. “방역 수칙을 지키는 안정감 있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이 지사 측 관계자)는 판단이 깔린 형식이다.

현장 연설에서 나올 수 있는 예기치 않은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이 지사의 즉흥 대답은 그의 장점으로도 꼽히지만, 일부에선 “불안해 보인다”는 우려를 받기도 했다. 지난달 이 지사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선연기를 주장하는 경쟁 주자를 ‘가짜 약 장수’에 비유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이 지사 측 내부에서도 “깜짝 놀랐다”는 반응이 있었다.

민주당에선 “ ‘도리도리’ 윤 전 총장보다 이 지사의 출마 선언이 훨씬 안정적으로 느껴졌다”(서울 초선)는 말이 나왔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을 참배하고 있다. 2021.7.1 오종택 기자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을 참배하고 있다. 2021.7.1 오종택 기자

출마선언 후 이어진 첫 공개 일정은 서울 동작구 현충원 방문이었다. 역대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게 대선 주자들의 일반적 행보지만, 이 지사는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부터 참배했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많은 분께서 왜 무명용사 묘역을 가느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을 착성하고 있다. 2021.7.1 오종택 기자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을 착성하고 있다. 2021.7.1 오종택 기자

현충원 참배 동선에도 ‘개천에서 난 용’ 느낌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묻어 있다는 분석이다.
이 지사의 한 핵심 측근 의원은 “이름 없는 공장의 이름 없는 소년공 출신은 이 지사의 정체성이다. 묵묵히 희생하고 견디는 수많은 민초의 시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지사가 이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충원 무명용사탑은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참배한 적 있는 곳이다. 친문 유화 메시지를 던진 측면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오후 일정으로 잡힌 경북 안동 방문은 ‘TK(대구ㆍ경북) 출신 민주당 대선 주자’를 강조하려는 동선이다. 안동은 그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그는 유림서원과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한 뒤 선친 묘소를 찾을 예정이다.

유림서원 방문과 선친 묘소 참배는 가족사와 관련한 논란을 초반부터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이 지사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민주당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가족사 논란과 관련 “세월도 10년 지났고 저도 많이 성숙했다. 앞으로 다신 그런 참혹한 일이 안 생길 것”이라며 “국민께서 제 부족한 점에 대해 용서를 바란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지사 측 수도권 의원은 “이 지사는 가족사 논란을 자신의 미숙한 부분이라 여기고 많이 반성하고 있다. 유교의 상징인 유림서원과 선친 묘소를 찾는 것도 그와 관련 있다. 진정성 있게 반성하고 사과드리는 모습을 계속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육사문학관은 “없는 시간을 쪼개 이 지사가 콕 집어 가겠다고 한 장소”(이 지사 측근)다. 이 지사 주변에선 "안동 출신의 좌파 행동주의자였던 항일 시인 이육사는, 충청 출신의 우파 민족주의자인 윤봉길 의사와 대응되는 인물"이란 해석도 나왔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29일 대선 출마 선언을 서울 윤봉길 기념관에서 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