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누나가 투명하게 사라졌다"…'창녕 학대' 본 동생 충격증언

중앙일보

입력 2021.06.30 22:19

업데이트 2021.07.01 10:56

아동 학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창녕 9살 아동 학대 사건' 친모(노란색)가 지난해 8월 14일 오후 경남 밀양시 창원지법 밀양지원에서 열리는 1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동 학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창녕 9살 아동 학대 사건' 친모(노란색)가 지난해 8월 14일 오후 경남 밀양시 창원지법 밀양지원에서 열리는 1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층 다락방으로 쫓겨났을 때 엄마가 비닐봉지에 맨밥을 담아서 주었고, (중략) 엄마와 아빠에게 맞은 후 2층 테라스 구석에서 맨밥에 더러운 물을 먹었다.”

“다른 가족들이 식사하는 동안 그 옆에서 잔심부름하며 기다렸고, 가족들이 식사를 마친 후 남은 반찬을 집어 먹었다.” (중략)  

지난해 5월 29일 온몸에 멍이 든 상태로 집에서 도망 나온채로 발견된 경남 창녕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 A양(당시 9세)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다. A양은 당시 쇠사슬로 묶여 있거나 달군 프라이팬과 젓가락으로 지지는 학대를 당하는 등 사실상 노예같은 생활을 해온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아동학대 부모, 항소심서 형량 높아진 이유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민정석)는 30일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6년과 3년을 선고받은 계부(37)와 친모(30)에게 각각 징역 7년과 4년을 선고했다. “계부와 친모가 딸에게 한 학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는 판단에서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내렸다. 하지만 친모는 심신미약이 인정돼 계부보다 형량이 가볍다. 또 이들에겐 5년 간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 취업 제한, 아동학대 프로그램 40시간 수강도 명령했다.

A양은 친모 등과 같이 살던 빌라 4층 높이 옥상 지붕을 타고 탈출해 잠옷 차림으로 도로를 뛰어가다 한 주민에게 발견돼 구조됐다. 높이 약 10m인 지붕은 경사가 져 어른이 건너가기에도 아슬아슬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빌라 테라스에 쇠사슬로 묶여 감금돼 있다가 잠깐 풀린 틈을 타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A양은 발견 당시 인근 편의점에서 발견한 주민이 먹을 것을 사주자 며칠을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창녕 아동학대 소녀가 살던 4층 빌라(오른쪽) 테라스 모습. 테라스와 테라스 사이 경사가 진 지붕을 건너 A양은 탈출했다. 위성욱 기자

창녕 아동학대 소녀가 살던 4층 빌라(오른쪽) 테라스 모습. 테라스와 테라스 사이 경사가 진 지붕을 건너 A양은 탈출했다. 위성욱 기자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A양이 친모 등으로부터 받은 학대는 충격적이었다. 친모 등은 지난해 1월부터 4개월간 불에 달군 프라이팬과 쇠젓가락으로 당시 9살이던 A양의 손가락이나 발바닥을 지지는 등 학대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 및 특수상해)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평소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목에 쇠사슬을 걸어 채운 채 화장실 수도꼭지 등에 묶어 두기도 했다. 달군 프라이팬과 쇠젓가락으로 지졌고, (열을 가해서 물건 등을 접착할 때 사용하는) 글루건의 실리콘을 양쪽 발등 및 배 부위에 떨어뜨려 화상을 입게 했다”는 A양의 진술 대부분을 인정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학대 장면을 동생들이 지켜봤다는 점이다. A양의 동생들은 아동보호 기관의 방문 조사 당시 ‘A양이 학대당할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엄마와 아빠가 A양을 때릴 때 (A양이) 투명해지면서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동학대 범죄는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아동에게 일방적으로 해악을 가해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줄 뿐 아니라, 피해 아동에게 씻기 어려운 기억을 남겨 향후 성장 과정에서 지속해서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친모 등이 일부 범행을 부인하는 등 반성하며 사죄하는 마음이 있나 의심스러우며, 피해보상 예상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판결이 너무 가볍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1심 선고 후 계부와 친모는 반성문만 150여 차례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에 시민단체 등에서는 엄벌진정서를 500여 차례 법원에 보내며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한편 A양은 과거 자신을 보호한 적 있는 위탁 가정에서 지내고 있다.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이 이 가정을 꾸준히 방문해 A양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데 1년 만에 키가 15㎝ 자랄 정도로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 기관 측의 설명이다. 이 기관의 관계자는 “A양에 대해서는 1년마다 보호명령 연장을 신청하는 식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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