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신 '자국민 우선주의' 19개국…‘백신 사각지대’ 놓인 재외국민

중앙일보

입력

국내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이 30%에 육박하고 있지만 해외에 거주중인 재외국민 중 상당수는 여전히 아무런 기약 없이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28일 대구시민체육관에 마련된 북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는 모습. [뉴스1]

국내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이 30%에 육박하고 있지만 해외에 거주중인 재외국민 중 상당수는 여전히 아무런 기약 없이 백신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28일 대구시민체육관에 마련된 북구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는 모습. [뉴스1]

국내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률이 29.8%(29일 0시 기준)를 넘겼지만 여전히 백신 접종에서 소외된 채 코로나19 공포에 떠는 국민이 있다. 한국 국적으로 해외에 거주 중인 재외국민들의 이야기다.

19개국 백신 접종 '자국민 우선주의' #기약 없이 발만 구르는 재외국민 #베트남·인도네시아 코로나 악화 #'백신 배송'은 통관·보관 어려움

백신 수급은 충분치 않고 코로나 기세도 꺾이지 않는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일부 동남아 국가에 거주 중인 교민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 국가는 그나마 확보한 백신 물량마저도 ‘자국민 우선주의’ 원칙이 적용돼 교민들이 백신 접종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총 123개국의 재외국민 2863명(누적)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 세계에 거주 중인 재외국민이 총 268만명(2018년 12월 기준)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외국민의 코로나19 확진 비율 자체는 약 0.1%로 높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모국이 아닌 외국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에겐 더 큰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한국과 달리 의료 시스템이 미비하거나 외국인은 아예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하는 나라들도 많다. 

백신 물량 빠듯한 동남아, '자국민 우선주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대상과 기준, 절차 등은 국가별로 제각각이다. 한국의 경우 여행 목적의 방문자 등 일부 경우를 제외하곤 3개월 이상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에게는 차별 없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연령별로 정부가 정한 시기에 신청해 백신을 맞을 수 있다.
4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불법체류 외국인 역시 정부의 공식 지침상 백신 접종 대상자에 포함된다. 밀접 접촉을 통해 전파되고 지역사회 감염이 가장 큰 문제인 코로나19의 특성상 국적을 따져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관계자는 “국가별, 지역사회별 면역체계를 쌓아나가는 데 중요한 기준은 해당 공간·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지 ‘한국인’에게만 백신을 접종하는 건 의미 없는 행위”라며 “불법체류자라 하더라도 백신을 접종하는 것은 그들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파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나라들은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에 선을 긋는 경우가 많다. 외교부에 따르면 19개국은 자국민에게 접종할 백신 물량조차 부족, 외국인은 백신 접종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고 있다. 현재로선 19개국에 체류중인 우리 재외국민은 백신을 맞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확진자 800명대 베트남, '코로나 공포' 여전 

베트남에 거주중인 약 17만2000여명의 교민들은 여전히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베트남 정부가 자국민을 대상으로 백신을 우선 접종하며 외국인과 차등을 두고 있어서다. 신규 확진자가 800명을 넘어서는 등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교민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베트남에 거주중인 약 17만2000여명의 교민들은 여전히 백신 접종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베트남 정부가 자국민을 대상으로 백신을 우선 접종하며 외국인과 차등을 두고 있어서다. 신규 확진자가 800명을 넘어서는 등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교민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17만2000여명의 재외국민이 사는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한때 철저한 봉쇄로 코로나19 확산세를 잡았지만, 최근 지역 감염이 다시 본격화하고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지난 25일 신규 확진자가 845명에 이른다.

특히 베트남 정부가 최근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코로나19 검사 및 백신 구매 비용을 요구한 일까지 있었다. 지난달 베트남 박닌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휴대전화 공장에서 현지인 직원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아, 생산시설에 근무하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단 검사가 진행됐는데 베트남 정부의 지원 없이 모든 비용을 삼성전자가 자체 부담해야 했다. 외국인에 대해 백신 접종을 금지하고, 진단 검사 지원도 해주지 않으면서 부담만 지우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그렇다고 국내로 들어와 백신을 맞는 것도 여의치 않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 중인 김탁현(57)씨는 “베트남은 백신 물량 자체가 턱없이 부족해 일부 기업 주재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민은 언제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에 입국하면 백신을 접종받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교민 중 상당수는 생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인 탓에 자가격리가 부담돼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일일 확진자가 2만여명을 넘기고, 델타 변이 바이러스까지 확산하며 코로나19 피해가 연일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외국인에 대한 백신 접종 기준 자체가 명확치 않아 지금까지 극히 일부 교민만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교민은 총 2만2000여명 중 18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인도(221명) 다음으로 재외국민 확진자가 많다.  

외교장관 요청했지만 막막한 '재외국민 접종'

지난 23일 부이 타잉 썬(오른쪽) 베트남 외교부장관과 만난 정의용 외교부 장관.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 교민의 백신 접종을 위해 베트남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부이 타잉 썬(오른쪽) 베트남 외교부장관과 만난 정의용 외교부 장관.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 교민의 백신 접종을 위해 베트남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지난 21~25일(현지시간) 동남아 3개국을 순방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베트남·인도네시아 측과의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국 교민에 대한 백신 접종을 요청한 것 역시 재외국민이 ‘백신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정 장관은 베트남 및 인도네시아 외교장관과의 회담을 통해 우리 교민들이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 없이 공평하게 백신을 접종해달라는 취지였다.

다만 현재로선 ‘협조 요청’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게 한계다. 각국 정부의 보건 정책 운용 자율성에 기반을 둔 백신 접종 기준에 관여할 수 없는 데다, 한국 국적 재외국민만 예외로 인정해 달라는 요청 역시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운송·보관부터 '부작용' 우려까지 

사진은 경기도 평택 오성면에 위치한 한국초저온 물류센터. 정부는 저온 상태에서 보관해야 하는 백신의 특성상, 재외국민을 위한 '백신 배송' 등은 현재로선 어렵다는 입장이다. 백신이 부족한 대부분의 국가에선 백신을 운송하고 보관하는 인프라 자체가 부족해 백신이 오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사진은 경기도 평택 오성면에 위치한 한국초저온 물류센터. 정부는 저온 상태에서 보관해야 하는 백신의 특성상, 재외국민을 위한 '백신 배송' 등은 현재로선 어렵다는 입장이다. 백신이 부족한 대부분의 국가에선 백신을 운송하고 보관하는 인프라 자체가 부족해 백신이 오염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이에 외교부는 한국 정부 차원에서 해외 교민들을 위한 별도의 백신 물량을 확보한 뒤 이를 배송하는 방안도 검토한 적이 있지만, 질병관리청은 현재로썬 불가능한 방안으로 판단했다.

▲국내 백신 수급 상황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고 ▲백신을 해외에 보낼 경우 통관 및 보관의 문제가 있으며 ▲백신 부작용이 발생했을 경우 법적 책임의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재외국민을 위해 해당 국가에 백신을 보낸다 해도, 이를 보관·유통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경우 백신 오염 등으로 오히려 부작용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이와 관련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측은 “현재로썬 국내 수요를 감당하기에도 백신 물량이 부족하고, 해외 교민들을 위한 백신 배송의 경우 여러 현실적 제약이 있어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3분기쯤 되면 국내의 백신 수급 상황이 보다 원활해질 것으로 보고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재외국민을 위한 백신 접종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재외국민이 많은 국가들에 백신을 기여, 우리 국적자들에게도 백신 접종 기회가 늘어나도록 우회적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의용 장관 역시 지난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현지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갖고 “교민들에게 백신을 공급하더라도 (해당 국가에) 기여하는 형식으로 해야지, 한국인만 특정해서 (백신을) 맞혀달라고 하는 건 우리의 외교 방식이 아니다”며 “교민들이 본국에 들어와서 백신을 맞는 방법 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