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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온 독립영웅의 고손자, 재수 끝에 대학생 되다

중앙일보

입력

인천 송도에서 취미인 묘기용 자건거를 타는 최일리야. 본인 제공

인천 송도에서 취미인 묘기용 자건거를 타는 최일리야. 본인 제공

지난 28일 자전거를 타고 묘기를 뽐내는 청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평소 묘기 자전거를 타는 게 취미인 그는 최근 인천대 전자공학과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 2019년 모국인 러시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한국행을 택한 지 2년 만에 이룬 성과다. 소감을 묻자 그는 서툰 한국어로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러시아 가족과 한국에서 같이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에게 알렸다”며 “할아버지 나라에서 대학생이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고조할아버지 나라에서 대학생으로 첫발을 내딛는 최일리야(19). 그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860~1920)의 현손(玄孫·4대손)이다.

한국 온 뒤 만난 수차례 위기

2019년 국내 입국을 앞두고 최일리야가 어머니 코사리코바 마리나(왼쪽)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최재형기념사업회 제공

2019년 국내 입국을 앞두고 최일리야가 어머니 코사리코바 마리나(왼쪽)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최재형기념사업회 제공

청년의 꿈이 이뤄지기까진 많은 난관이 있었다. 최재형 선생 손자(인노켄티)의 손자인 최일리야는 2018년 경북도가 연 재러시아 독립운동가 후손 초청 행사를 통해 한국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당시 그의 사연을 접한 인천대가 어학원 입학을 제안하면서 이듬해 낯선 할아버지의 조국과 인연을 맺었다.

공부를 시작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 한글의 자음과 모음만 간신히 익힌 탓에 학습 진도가 더뎠다. 예정보다 한 학기 늦은 지난해 가을에서야 인천대에 원서 넣을 자격을 얻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러시아에서 고등학교 학업·성적 증명서 발급이 늦어지면서 잠시 위기가 왔지만, 모스크바 주한 영사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접수 기한을 맞췄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최일리야는 대학 입학 면접에서 결국 고배를 마셨다.

실망한 최일리야를 이번엔 병마가 괴롭혔다. 지난 2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병원 신세를 졌다. 요로가 막혀 신장이 붓는 수신증이었다.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병원비도 걱정이었다. 러시아 국적이어서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인천시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이 지원 의사를 밝혔다. 방송사 퀴즈쇼 프로그램에서 받은 상금 전액을 치료비로 써달라며 건넨 고교생 조민기(16)군을 비롯한 온정의 손길 덕에 위기를 이겨냈다.

재수 끝에 결실 본 도전

최재형 선생의 4대손 최일리야가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진행된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순국 제100주기 추모식에서 취지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스1

최재형 선생의 4대손 최일리야가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진행된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순국 제100주기 추모식에서 취지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스1

이번 달 초 최일리야는 인천대 입학에 다시 도전했다. 목표는 전자공학과였다. 어학연수 비자(D4)로 입국한 그에겐 유학생 비자(D2)를 얻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인천대 어학원에서 6학기를 채운 터라 어학연수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선 다른 대학 한국어학당에 재입학하거나 러시아로 돌아가야 했다. 면접을 앞두고 밤낮없이 공부에 매진한 끝에 지난 24일 인천대 신입생이 됐다.

올해 가을 인천대 입학을 앞두고 최일리야는 다음 달 초 러시아 행 비행기에 오른다. 1년여 만에 가족들을 만나 시간을 보낸 뒤 8월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연신 “빅 베이비(최 일리야)가 걱정된다”고 하던 최일리야의 어머니는 “코로나 때문에 아들을 자주 못 봐서 아쉬웠는데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온다니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고 한다.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다사다난했는데 최일리야가 노력의 결실을 거둬 다행이다”며 “러시아에 있는 최일리야의 어머니를 대신해 그가 할아버지 나라에서 꿈을 이루도록 계속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 선생은 190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안 의사에게 권총을 마련해 주는 등 의거를 막후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중앙포토

최재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다. 안중근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모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하원 연설 도중 안중근 의사 등과 함께 언급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러시아 군대에 물건을 납품하면서 축적한 부로 무장 독립투쟁을 지원했다. 연해주 내 한인 마을마다 소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힘썼다. 그는 일제가 고려인을 무차별 학살한 1920년 순국했다. 유가족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했다. 후손들 대부분의 국적은 러시아다. 대한민국 정부는 42년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3급)을 추서했다. 초이 일리야는 최재형 선생 손자(인노켄티)의 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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