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0년대 비누가 돌아왔다…친환경 바람타고 MZ세대 열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다양한 쓰임새의 비누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다양한 쓰임새의 비누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지금껏 딱딱한 비누는 주로 손을 씻거나 빨래를 할 때 쓰였다. 하지만 액체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고체 비누 시장이 수요와 기능 면에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용기 필요없는 비누의 재발견 

2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는 ‘샴푸 바’ ‘클렌징 바’ ‘설거지 바’ 등 네모난 막대를 가리키는 바(bar) 형태의 다양한 비누가 출시되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김민선(36) 씨도 올 들어 화장을 지운 뒤 비누로 얼굴을 씻고 있다. 김 씨는 “처음엔 피지 조절 성분이 들어있다고 해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다 쓰고 나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며 “앞으로 샴푸나 린스도 비누로 바꿔보려 한다”고 말했다.

럭키(현 LG생활건강)에서 출시한 '알로에비누' 광고화면. 사진 유튜브 캡처

럭키(현 LG생활건강)에서 출시한 '알로에비누' 광고화면. 사진 유튜브 캡처

미용 비누는 198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미연·오연수·이혜숙 등 당시 톱 탤런트들이 광고 모델로 등장했는데 이전 세대 비누보다 기능이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촉촉함이 그리울 때 자연성분을 비누에 담아…피부가 먼저 느껴요. (럭키 알로에 비누)’ ‘모발엔 윤기를 피부엔 청결함을. (동산 창포비누)’ ‘비타민E가 들어있는 촉촉한 비누 (럭키 드봉 비누)’ 등이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국내외 세정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액상 제품이 화장품·미용 시장의 주류가 됐다. 고체 비누보다 액상 제품이 더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자리 잡았다.

비누 1개에 액상 2~3통 용량 

비누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불과 1~2년 전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생태계를 교란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넓게 이뤄졌다. 특히 20·30대를 중심으로 생활 속에서 되도록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제품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관련 업체들도 유기농·천연 성분을 사용한 ‘고급 비누’들을 내놓으면서 친환경과 미용효과를 동시에 갖춘 시장이 만들어졌다. 실제 고체형 샴푸의 경우 정제수를 빼고 응축했기 때문에 액상 샴푸보다 2~3배 오래 사용할 수 있다. 플라스틱 통 2~3개를 줄이는 셈이다.

'자주(JAJU)'가 올 6월 내놓은 샴푸와 바디워시 등 고체 비누 4종류.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자주(JAJU)'가 올 6월 내놓은 샴푸와 바디워시 등 고체 비누 4종류. 사진 신세계인터내셔날

고객 10명 중 8명은 20·30대 

일단 소비자 반응은 긍정적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가 이달 초 내놓은 고체 비누 ‘제로 바’의 경우 출시 보름 만에 두 달 치 판매 예정 물량의 70%가 팔렸다. 특히 구매 고객의 80%가 20·30대 젊은 층이었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인 ‘아로마티카’가 지난 11월 내놓은 4가지 비누 바 역시 고체형 세안용 비누를 만들어 달라는 고객 요청이 많아 회사가 개발한 제품이다. 그 결과 출시 이후 6월까지 비누 바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월평균 매출 증가율의 3배에 달한다.

로즈마리 등 자연 유래 성분을 사용한 '아로마티카' 비누 바. 사진 아로마티카

로즈마리 등 자연 유래 성분을 사용한 '아로마티카' 비누 바. 사진 아로마티카

비누 바의 원조는 영국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 ‘러쉬’의 샴푸 바로, 지난 1988년 개발돼 특허를 받았다. 비누 1개에 250g 샴푸 3통의 양이 담겨 플라스틱 용기와 포장 쓰레기는 물론 운송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러쉬코리아에 따르면 국내에서 샴푸 바 매출은 6월 말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전년 대비 11% 늘어났다.

'러쉬'의 샴푸 바 모습. 알록달록한 색상은 모두 천연 재료 자체의 색깔이다. 사진 러쉬코리아

'러쉬'의 샴푸 바 모습. 알록달록한 색상은 모두 천연 재료 자체의 색깔이다. 사진 러쉬코리아

해외 브랜드 ‘명품비누’ 전략

고체 미용 비누의 가격은 약 1만원 대이지만, ‘비누파’ 소비자들은 개당 5만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해외 브랜드 제품에도 지갑을 여는 추세다. 이탈리아 화장품 브랜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경우 올 들어 6월 현재까지 16가지 고체 비누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60% 증가했다. 야자수와 코코넛 오일, 우유와 꿀 성분을 넣고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포장해 60일간 숙성시켰다는 프리미엄 전략이 통하고 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사포네 벨루티나' 비누(왼쪽)와 자연분해되는 노끈이 달려 욕실에 걸 수 있는 '라부르켓'의 '솝 로프' 비누. 사진 각사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사포네 벨루티나' 비누(왼쪽)와 자연분해되는 노끈이 달려 욕실에 걸 수 있는 '라부르켓'의 '솝 로프' 비누. 사진 각사

스웨덴 브랜드인 ‘라부르켓’ 은 지난해 자연 유래 성분으로 만든 3가지 종류의 고체 비누를 출시했는데, 찾는 고객이 늘면서 5가지로 종류를 늘렸고 올 들어 6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40%나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20·30세대 고객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친환경 소비를 즐기기 때문에 자연 유래 성분과 재활용 포장의 제품이 점점 필수가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체마다 기존 여러 종류의 화장품들을 포장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고체화하는 개발 작업에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