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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과학기술 인력 정책, 즉흥보다 통찰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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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지난봄에 파 가격이 폭등해 큰 이슈가 됐다. 올겨울에 파 재배 면적이 급증하고 큰 냉해가 없다면 생산량이 폭증해 내년엔 유례없는 파 가격 폭락이 있을 수 있다. 품목이 바뀌지만 반복해서 보는 익숙한 모습이다. 근원적 처방이 요구되지만, 누구도 시간이 걸리는 시스템 개선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현장 이해와 통찰력 없이 ‘뚝딱’ #과학기술인력 총조사부터 해야

생산주기가 수개월 정도인 농수산물 수급 정책과 최소 10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 과학기술 인력 정책이 비슷한 상황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보편화하고 플랫폼 산업이 주류가 되면서 코딩인력과 AI 관련 인력이 절대 부족해졌다. 산업현장에서는 필요한 인력이 없으니 연봉이 치솟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한다. 정부가 이에 화답해 10만명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지원한다고 하니 그제야 대학이 교수를 충원하고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AI 관련 학과로 신입생이 대거 몰리고 있지만, 산업현장에서 아무리 아우성쳐도 대학에서 인력을 양성하는데 최소 4년, 박사인력은 5년이 걸린다. 이 인력이 현장에서 훈련하는데 최소 1~2년이 또 걸린다. 현장의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고 소위 전문가들은 앞뒤 없이 정부 정책의 무능을 탓하게 된다. 모두 처음부터 예상되는 모습이고 여러 차례 경험한 정부의 과학기술 인력 양성 정책들의 데자뷔다.

다가올 미래도 예상이 된다. 10년 후에 많은 AI 인력들이 산업현장에 나왔을 때 이미 핵심 인력들은 어떻게든 기업이 확보했을 것이고, 장기적 수요도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고급 실업자가 양산될 수도 있고, 대학 전공의 AI 쏠림과 학령인구 급감으로 인해 바이오·반도체·소재 분야는 또 다른 인력난이 예상된다. 이것이 과학기술 인력 정책을 줄곧 반대하고 걱정하는 이유다.

정작 수요는 중장기적인 산업 발전과 혁신에 있는데, 현장의 요구에 일차원적으로 반응해 표 내기 쉬운 정책에만 열중한다. 그야말로 ‘정책 자판기’다. 요구가 빗발치면 동전 두 개를 넣고 한두 달 만에 뚝딱 하고 인력 정책을 발표한다. 현장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은 고사하고 진정성조차 의심이 든다.

과학기술 인력 정책은 긴 호흡과 전체적인 틀이 중요한 것이지 세부 분야별로 즉자적으로 대응해서는 곤란하다. 굳이 AI 인력 육성 방안을 시급히 만든다면 지난 정부들이 몇 차례 시행했던 소프트웨어 인력 육성 정책의 문제점을 잘 분석하고 시장 수요를 장기·단기로 나누고, 요구되는 인력의 수준별로 정리해서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통합적인 접근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 인력의 큰 틀은 현안에 묻히고, AI 인력 육성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일각에서 독자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도 자문을 요청하지 않는다. 실효성이 낮은 정책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고, 중장기 과학기술 인력 육성의 틀은 뒤틀리게 된다.

역대 정부가 그래왔고, 지금 정부의 책임만도 아니다. 산업인력 수급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의해 움직여야 하고 기업의 선제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노력도 없다. 이제라도 근본적이고 시스템적인 처방을 위해 노력할 때다. 그 시작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주문한 과학기술인력 총조사다. 지금은 이공계에서 배출하는 학사·석사·박사, 그리고 박사후연구원에 대한 조사도 데이터도 없으니 종합적인 인력 정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기업의 수요를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예측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아파서 치료가 어려운 상태에서 수술하기 전에 정기건강검진을 해야 한다. 지금은 기존 산업을 계속 파괴하는 혁신의 시대다. 한 가지만 할 줄 아는 전문 인력을 숫자에 맞춰 양성하는 산업화시대가 아니다. 인력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의 변화와 통찰이 절실하다.

염한웅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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