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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키 아닌 연기 봐 달라"···'128.8㎝' 배우 지망생 강현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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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3월 학교를 마치고 연기학과 친구의 집에 놀러간 강씨가 찍은 사진. 뒤에 보이는 배경은 경기도 안산시의 시내다. 강씨는 평소 친구들과 놀며 사진을 자주 찍어본다고 했다. 사진 강씨 제공

지난 3월 학교를 마치고 연기학과 친구의 집에 놀러간 강씨가 찍은 사진. 뒤에 보이는 배경은 경기도 안산시의 시내다. 강씨는 평소 친구들과 놀며 사진을 자주 찍어본다고 했다. 사진 강씨 제공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쩍벌’인데, 이렇게 앉아도 될까요?”

연기자 지망생 강현준(22)씨가 웃으며 물었다. 평균보다 다리가 짧은 그는 “다리를 모아서 의자에 앉으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씨의 키는 128.8㎝다. “소수점 아래도 잊지 말고 써 달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면서도 키를 장애와 연결짓는 세상의 시선과 표현에 반대한다고 했다.

[별★터뷰] #오디션 영상으로 화제 강현준씨 #키 128.8㎝, 20학번 연기자 지망생 #영화·연극 6편 출연, 무용 공연도 #“계획? 주어진 기회 열심히 좇는 것”

지난 15일 경기도 안산시의 한 스튜디오에서 기말고사를 위해 연기 연습을 하는 강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연기를 못하는 연기자 지망생’이라고 소개했지만, 겸손한 표현으로 보였다. 지난해 약 10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예대 연기학과에 입학했고, 무대에 서기 시작한 지는 3년여가 됐다. 단편 영화 2편, 소규모 연극 4편 등에 조연으로 출연해 관객들을 만났다. 무용이 특기여서 무용 무대 경험도 3번이 있다.

그는 지난 2월 SNS ‘틱톡(TikTok)’으로 명성을 얻었다. 오디션을 위한 연기 영상이었다. 당시 배역을 따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틱톡 사용자들에게 받은 ‘좋아요’ 수는 합격한 배우를 앞질렀다.

지난 2월 강씨가 카페에서 찍은 일상 사진. 사진 강씨 제공

지난 2월 강씨가 카페에서 찍은 일상 사진. 사진 강씨 제공

“어렸을 때부터 꿈이 연예인이었다”는 강씨의 꿈은 7살 때인가 본 광고 영상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꿈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걱정투성이었다.
 “다른 지망생들도 그럴 텐데 주변에서 ‘연기로 밥벌이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가족들도 걱정하셨다. 7살 때인가 광고를 보다가 어머니께 ‘저도 TV에 나오고 싶어요’라고 얘기했다가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어릴 때는 지금보다 (외모에 대한) 편견이 심한 사회였고, 늘 놀림 받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것 같다. 늘 평범한 직업, 앉아서 할 수 있는 직업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늘 자신감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감의 근거에 대해 “어려서 그랬는지…”라고 했지만, 가슴 속에 야무진 논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내가 얼마나 게으르냐 못하느냐가 문제지, 외모 때문에 못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이 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내가 풀어낼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데 배우를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머니의 반대였다. “진짜 하고 싶어요”라고 계속 설득했지만, 몇 년 동안 어머니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라”고 하셨다. 18살 때도 아들이 고집을 꺾지 않자, 어머니는 “(진로는) 네가 알아서 해라. 다만 후회할 행동만 하지 말아라”고 허락을 했다. 그 뒤 1년 동안 독학으로 연기 공부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했다고 한다.

지난 4월 강씨가 찍은 프로필 사진. 사진 강씨 제공

지난 4월 강씨가 찍은 프로필 사진. 사진 강씨 제공

학원 도움 없이 혼자 준비하다 보니 수십 번 떨어졌다. 스무살 때 연기과가 아닌 다른 전공으로 진학했지만, 연기의 꿈은 더 커졌다. 돈을 모아 연기 학원에 다니며 재수를 했다. 강씨는 “지금 학교에 정말 오고 싶었지만, 입학한 것만으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갈 길이 너무 멀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학교생활은 어떤가.
“평범한 대학생이다. 아침 9시 반부터 수업을 듣고, 끝나면 과제 한다. 과제는 연기·춤 연습도 있고, 예술 작품을 보고 보고서를 쓰기도 한다. 사실 학구파는 아니다. 친구들과 PC방 가고 영화 보러 가는 게 제일 좋다. 잘 그리진 못하지만 그림도 그린다. 저녁에 혼자 있을 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누워서 쉰다. 작년 초까진 연극 활동도 했었는데, 코로나19 이후로 연기과 학생들이 설 무대가 많이 없다.”
연기학과는 좋은가.
“보고 배울 만한 선후배들이 많은 곳이라 만족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연기 지망생인 학생들의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공연도 많이 없고, 연습실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돼있다. 예전엔 축가 알바나 연극 출연으로 많이 벌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아닌 듯하다. 그래도 열정 있는 친구들이 모인 과이니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강씨가 찍은 프로필 사진. 사진 강씨 제공

지난달 강씨가 찍은 프로필 사진. 사진 강씨 제공

배우에게 작은 키는 콤플렉스인가, 강점인가.
“둘 다다. 외형적인 모습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배역이 아무래도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그걸 나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배우 피터 딘클리지처럼 연극, 뮤지컬 분야에 존경할 만한 배우가 국내·외에 많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예전엔 누군가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처럼 못생긴 사람도 열심히 사니까 힘내시라고. 그런데 요즘엔 조금 더 단순하다. 누군가 나를 생각했을 때, ‘그 배우 연기 잘하더라’ 한마디 듣고 싶다. 거기까지 안 되더라도 ‘신선하던데?’라고만 생각해주셔도 성공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계획이야 머릿속에 있지만 늘 그대로 안 되더라.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열심히 좇는 게 내 계획이다. 오디션 영상을 올렸더니 SNS 팔로워가 늘었고, 이 인터뷰도 하게 됐다. 계속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고 한다. 지켜봐 달라.”

편광현 기자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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