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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밭 벌판에 지은 백화점…50년 만에 20조 그룹으로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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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 해 매출 8000만원에서 20조원으로, 공사장 함바집에서 서울을 상징하는 여의도의 더현대서울까지…. 

15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현대백화점의 과거와 현재다. 현대백화점 그룹은 1971년 설립된 금강개발산업㈜이 모태다. 금강개발산업은 현대건설 공사장 부근에서 근로자의 유니폼이나 안전모, 그리고 식사를 제공하는 사실상의 함바집(건설현장의 간이 식당) 같은 회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 부촌을 상징하는 압구정동과 경기 판교, 여의도 등에 백화점을 보유한 유통 명가이자 패션, 리빙·인테리어 등 3대 주력 사업을 중심으로 연 매출 20조원을 올리는 재계 2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2020년 기준).

현대백화점그룹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현대백화점그룹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함바집서 핫플 더 현대서울까지  

압구정동에 현대백화점이 처음 들어선 건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몽근(79)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은 당시 부친인 ‘왕(王)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백화점을 짓자고 처음 말을 꺼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유통업은 가볍다. 그리고, 백화점은 시내에 있어야 한다”며 아들의 말을 막았다고 한다. 배나무밭과 아파트만 덩그러니 있을 뿐 시내와 멀리 떨어진 압구정동에 백화점을 짓자는 아들을 완곡하게 말린 것이다. 하지만 정몽근 명예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던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를 들며 부친을 수차례 설득했다고 한다. 후다코다마가와점 역시 허허벌판에 백화점을 짓는다는 우려가 컸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성공사를 써내려간 백화점이다.

1985년 12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이 개점했다. 당시 매장을 둘러보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사진 가운데)와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왼쪽).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1985년 12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이 개점했다. 당시 매장을 둘러보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사진 가운데)와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왼쪽).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王회장 설득해 백화점 진출  

왕회장을 설득해 마침내 백화점업에 진출한 정몽근 명예회장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에도 공격적인 출점 전략을 구사한 걸로 유명하다. 전국 108개 백화점 점포 중 45곳이 문을 닫던 시절의 역발상이었다. 그는 1997년 서울 천호점을 시작으로 이듬해엔 부도 위기에 놓인 울산 주리원백화점(현 울산점)과 신촌 그레이스백화점(현 신촌점)을 인수했다. 경쟁사들이 출점을 자제하던 2000년대에 들어서도 미아점(2001년), 목동점(2002년), 중동점(2003년)을 잇달아 열었다. 그는 ‘고객 제일 경영’을 내세웠다. 대표적인 게 ‘주차장 제일론’이다. '서비스나 매장 환경 못지않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이란 믿음이다. 그래서 서울 목동점과 미아점은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보다 훨씬 넓다. 여성 소비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점포란 걸 고려한 것이다.

2010년 '비전2020' 선포식 당시의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 가운데.)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2010년 '비전2020' 선포식 당시의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 가운데.) [사진 현대백화점그룹]

유통·패션·리빙 기업 도약 

아들인 정지선(49)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재계에서 '조용한 2세 경영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 그는 좌고우면 않는 '뚝심 경영', 직원들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람 중심 경영'을 앞세워왔다. 정지선 회장은 2010년 ‘비전 2020’을 발표하고 조용하지만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소리 없이 사세를 키웠다. 2010년 이후 출점한 백화점만 6개, 아울렛은 8개에 달한다. 2012년 여성복 1위 기업 ‘한섬’과 가구업체인 ‘리바트(현 현대리바트)’를 잇달아 인수해 사업 영역을 유통에서 패션과 리빙ㆍ인테리어로 확장했다. 2010년 이후 추진한 M&A만 10여건이 넘는다. 또 면세점 사업에도 진출했다. 정지선 회장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현재 어려움을 겪는 대형마트는 제외한 것도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정지선 회장이 숱한 M&A를 할 당시 회사 안팎에서 ‘대형마트를 사야 한다'는 지적이 넘쳤지만 사들이지 않았다. 덕분에 현재 다른 유통기업과 달리 대형마트 실적 부진에 따른 스트레스가 없다.

10년 후 연 매출 40조 목표 

지난 50년간 연 매출이 8000만원에서 20조원으로 성장한 현대백화점그룹은 연초에 2030년까지는 40조원으로 늘리겠다는 ‘비전 2030’을 내놨다. 유통, 패션, 리빙·인테리어로 구성한 3대 핵심사업에, 뷰티·헬스케어·바이오·친환경 사업을 더해 덩치도 키우고 경쟁력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 앞에 놓인 과제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게 이커머스 시장에 대한 대응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온라인 거래액은 3조5000억원 선(2020년 기준)이다. 이미 이 시장에서는 네이버·쿠팡 등이 연 거래액 20조원을 돌파하며 치고 나가고 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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